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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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8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5)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 (상)

 

 

50세 중반의 체칠리아씨는 대인관계로부터 시작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어렵게 상담실을 찾아왔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마지막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청했다. 체칠리아씨는 스스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을 체험하고 있었고 친한 지인조차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만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보호해줄 그 누군가가 없으면 혼자서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체칠리아씨는 이러한 증상들이 발생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겪어온 이해되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중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행선지를 묻는 기사에게 “일단 강남 개포동 쪽으로 가주세요. 제가 약속장소를 확실히 몰라서 그러는데 친구랑 통화하면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사는 갑자기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면서 행선지도 모른 체 택시를 타는 몰상식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윽박질렀다. 자신이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저리 가는, 당신의 개인 운전기사로 보이느냐며 호통을 치고 화를 냈다. 너무도 무섭고 당황한 나머지 체칠리아씨는 만 원 한 장을 건네면서 자기를 그만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자신을 돈으로 농락하느냐면서 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차를 세우고 택시에서 내린 체칠리아씨는 그 후 곧바로 살해위협을 당했다고 한다. 분을 못 이긴 택시기사가 보도블록 위를 걷는 자신에게까지 차를 돌진하여 자신을 넘어뜨린 후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지 못할 법한 일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아침 무렵 서울의 한 지하상가 매장들을 둘러보며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어울릴 것 같은 신발을 발견한 그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한 번 신어보았다. 막상 신발을 신어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주인에게 미안하다며 매장문을 나섰다. 그 순간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주인의 막말과 욕설이 등 뒤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남의 가게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그냥 가는 인간이 어디 있느냐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체칠리아씨는 그 매장을 빨리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주인의 고함을 듣고 어느새 달려온 옆집 상가 주인들이 그를 둘러쌌다. 이들은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신발가게 사장 편을 들면서 아침에 신발을 신어봤으면 신발을 사고 가야지 그냥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협박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드는 신발을 어떻게 살 수 있느냐며 체칠리아씨는 끝까지 저항하였다. 그러자 그 상인 중 한 명이 재수가 없다면서 그의 얼굴과 몸에 소금 한 바가지를 퍼부어버렸다.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한 체칠리아씨는 그 후부터 도심의 지하상가를 들어갈 수 없었다.

 

체칠리아씨는 자신이 미국에 있을 때 심지어 사람들과 마주치면 도망치는 너구리에게서조차 이런 취급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저녁 식사를 한 후 산책을 나섰는데, 이때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먹을 것을 찾는 너구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야생 너구리는 먹이를 찾아 마을 쓰레기통을 뒤지곤 하는데 이때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그 너구리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자신에게 달려들어 타박상을 입혀 한동안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다.

 

체칠리아씨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인격적 모독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처음 몇몇 지인들에게 이런 체험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더 큰 실망과 좌절을 체험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낱 꾸며낸 일로 생각하거나 재미있게 과장한다면서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체칠리아씨가 망상 환자가 아니라면 과연 이런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5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6)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 (중)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자들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 원인은 초자연적이나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물리적 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믿는 물리적 힘이란 세상을 형성하고 움직이며 변화시키는 네 가지 힘, 즉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그리고 전자기력뿐이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에서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4가지 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학이나 심리학 같은 사회과학에서는 초자연적인 설명이나 미신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물리적인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지는 기대나 믿음이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피그말리온 혹은 골렘 효과가 대표적이다. 또한, 스스로 믿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자기실현적 예언도 비슷한 개념이다. 유사과학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 긍정/부정 생각은 실제로 긍정/부정 사건으로 이어진다) 역시 우리의 무의식적 정신세계가 실제적 현실 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런 심리적 현상들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양한 실험 집단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사실이나 법칙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적인 신념이나 기대심의 효과가 특정 집단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삶의 지혜로 삼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혹은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웃을 일이 생긴다” 등의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특별히 웃을 일이 없어도 의식적으로나마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미소를 선사하는 사람은 확률적으로도 즐겁고 좋은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말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피그말리온 혹은 골렘 효과나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를 쉽게 인정한다. 이런 심리적 효과를 실제로 믿는 사람에게는 체칠리아씨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심리적 효과 이론을 앞세우면, 체칠리아씨는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을 나약하고 피해받는 존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이별하고 아버지와 새엄마 밑에서 자란 그는 이른 나이에 가정 폭력을 체험했고 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불행한 가정환경 안에서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사랑과 인정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심한 질책과 꾸중을 듣고 자라왔던 것이다. 불안과 공포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체칠리아씨는 자신이 늘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는 부정적 자기 이미지와 낮은 자존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결국, 자신을 사회적 약자, 피해자, 혹은 실패자로 규정한 그는 실제로 부정적 자기개념에 부합하는 삶의 체험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기대 효과나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로 체칠리아씨의 주관적 경험을 해석하기에는 좀 더 그 과정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신념의 힘이나 끌어당김의 법칙이 일리 있는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나약한 존재로 느끼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체칠리아의 심리적 역동이, 사람이 두려워 도망치고 있는 너구리의 발걸음을 돌려놓을 만큼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 좀 더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어떤 영성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7)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 (하)

 

 

인간 개개인은 객관적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에서 익숙해진 관점으로 사물을 재구성해 인식한다. 이러한 뇌 현상은 시각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과정에도 적용된다.

 

체칠리아씨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면 자신이 체험한 실제적 체험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거쳐 재구성된 주관적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 습관을 형성하는 뇌 영역의 배측선조체의 영향력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경험을 부정적 자기개념과 상응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내적 세계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뇌 안에서 습관적으로 반복 재생되는 정보에 의해 재구성된 주관적 해석이다. 객관적으로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각자의 내면 안에서는 서로 다른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뇌신경학적 설명은 앞서 언급한 심리적 효과이론을 보완해 준다. 어린 시절 체칠리아씨는 사랑하는 엄마와 헤어진 후 새엄마와 살면서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 시절에 체칠리아씨는 새엄마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체칠리아씨가 바라보는 세상은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이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인 포식자들이었다.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은 체칠리아씨가 체험하는 모든 대인관계를 생존과 안전의 관점으로만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자신은 늘 피해자이며 따라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 생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체칠리아씨가 집 밖을 나서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것인지를 염려하며 대책을 세우는 습관이 생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체칠리아씨처럼 사람을 늘 경계하면서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방으로부터 적대적 행동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을 위협한 택시 운전사와 지하상가의 상인들은 모두 그들을 잠재적 공격자로 인식한 체칠리아씨의 적대적 언행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공격자로 인식한 체칠리아씨의 무의식적 예기불안이 결국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단초를 제공한다. 동시에 체칠리아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부의 부정적 사건들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은 확대 과장하고 긍정적 측면은 축소 왜곡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자기비하와 피해의식에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너구리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한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그만 체칠리아씨를 향해 돌진하게 만든 것이다. 체칠리아씨는 이 사실을 어렵게 기억하고 나서 씁쓸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체칠리아씨는 그동안 냉담했던 신앙생활을 되찾으며 점차로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극복해 나가는 영성상담을 받게 되었다. 배측선조체가 무의식적으로 이끌었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서서히 신앙의 관점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적 관점과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대상으로의 인간관 회복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엔 부모에게서조차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지친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피난처와 일용할 양식이다. 교회는 바로 이런 이들의 영원한 안식처이며, 주님은 영원히 이들의 배를 불리시는 생명의 양식이시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로 발걸음을 돌렸던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 춥고 배고픈 영혼이었을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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