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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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의 목적 · 정신 · 봉사(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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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2-03 ㅣ No.674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의 목적 · 정신 · 봉사(2-4장)

 

 

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2장 레지오의 목적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단원들은, 교회의 지도 아래, 뱀의 머리를 바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함으로써 성화된다.

 

레지오 마리애는, 꼰칠리움의 승인과 그 공인 교본이 명시하는 규정의 범위 안에서, 해당 교구의 주교와 본당 사목구 주임 신부가 레지오 단원에게 알맞고 교회 복지에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봉사와 가톨릭 활동을 그들의 뜻에 따라 전개한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들은 본당 사목구 주임 신부나 직권자(Ordinary)의 승인 없이는 그와 같은 봉사 활동이 어떤 것이든 그 활동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직권자란 교구 직권자, 다시 말하면 해당 교구의 주교 또는 그 밖의 교회 관할권자를 가리킨다.

 

“가) 이러한 조직의 직접 목적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며, 그들의 양심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형성하고, 다양한 공동체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는 교회의 사도직 목적이다.

 

나) 교계와 그 나름대로 협력하는 평신도들은 자기 경험을 살려 책임지고 이러한 조직을 운영하며, 교회의 사목 활동이 전개되어야 할 조건을 연구하고 활동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실천하여야 한다.

 

다) 평신도들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결합되어 행동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더 적절하게 드러내고 사도직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라) 교계 사도직과 직접 협력하여 활동하도록 권유를 받았거나 자발적으로 헌신한 평신도들은 그 교계의 상급 지도 아래 행동한다. 주교는 이러한 협력 단체를 명시적 위임으로 승인할 수 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20항)

 

 

제3장 레지오의 정신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성모 마리아의 정신이다. 레지오는 특히 성모님의 깊은 겸손,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갖가지 고행, 티 없는 순결, 영웅적인 인내심, 천상적 지혜, 용기와 자기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갖추고자 열망하며, 무엇보다도 성모님의 믿음을 따르고자 갈망한다. 믿음의 덕목의 극치는 성모님에게서만 발견되고 그에 필적하는 다른 믿음은 없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이와 같은 사랑과 믿음에 감화된 레지오는 어떤 일이든지 모두 해보려고 하고, “할 수 없다는 핑계를 안 하니 못할 것이 없고, 가하지 않은 것이 없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준주성범』 제3권 제5장)

“이 같은 사도적 영성 생활의 완전한 모범은 사도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시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사시는 동안, 가정을 돌보시고 일에 파묻혀 지내시면서도 언제나 당신의 아드님과 밀접히 결합되셨으며 구세주의 활동을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도와주셨다. …… 모든 이는 성모님을 열심히 공경하며 자기 생활과 사도직을 성모님의 보호에 맡겨 드려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4항)

 

 

제4장 레지오의 봉사

 

1.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여야 한다(에페 6,11).

 

레지오 마리애가 그 이름을 따 온 로마 군단은 충성, 용맹, 규율, 인내 그리고 승리로 여러 세기 동안 명성을 떨쳤으나 이는 흔히 천박하고 세속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서였다(부록 4 [로마 군단] 참조). 분명한 것은, 성모님의 군단인 레지오 마리애는 마치 보석이 떨어져 나간 장신구처럼 로마 군단보다 못한 자질들을 갖춘 군단이라는 이름을 성모님께 바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로마 군단이 지녔던 훌륭한 자질은 레지오 단원들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질을 나타낼 뿐이다. 베드로 성인의 권유로 개종한 후에 바오로 성인과 함께 일했던 클레멘스 성인은 로마 군단을 교회가 본받아야 할 표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원수는 누구인가?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싸움터에 과감히 뛰어들어 주님께서 내리시는 영광스러운 명령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자. 우리는 로마 군단의 지휘관 밑에 복무하는 장병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엄격한 규율과 복무 자세, 그리고 명령을 수행하는 복종심 등을 눈여겨보자. 그들 모두가 지방 장관이나 호민관, 백부장이나 오십부장 또는 하급 지휘관은 아니다. 그러나 장병 하나하나가 자기가 속한 계급에서 황제와 상관이 내리는 명령을 수행한다. 큰 것은 작은 것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작은 것은 큰 것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는 모든 부분을 한데 뭉치게 하여 각 부분이 서로 돕고 또 전체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우리의 몸을 살펴보자. 머리는 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이와 마찬가지로 발도 머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몸의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해도 몸 전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관이다. 사실상 모든 부분은 서로 의지하면서 움직이고 몸 전체가 유익하도록 다 함께 순응한다.”(성 클레멘스 교황 순교자 St. Clement :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 36장과 37장[A.D. 96년])

 

2.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로마 12,1-2).

 

신실한 레지오 단원이 가진 뜻이 고귀하면 고귀할수록 그의 내면에서는 더 위대한 덕성이 흘러나오며, 특히 예수의 성녀 데레사(St. Teresa of Avila)가 지녔던 감정을 반영하는 숭고한 너그러움이 흘러나온다. 데레사 성녀는 “그토록 많이 받고도 그처럼 적게 갚아 드리다니. 아! 이것이 내가 받아야 할 순교로구나.”라고 말하였다. 레지오 단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바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마지막 숨과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바치셨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봉사를 통해 그와 같은 완전한 자기증여를 반영하도록 힘써야 한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이사 5,4)

 

3. 수고와 고생을 피해서는 안 된다(2코린 11,27).

 

열심한 가톨릭 신자는 죽음이나 고문을 당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늘 있다. 수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이러한 영광의 문을 당당하게 통과해 왔다. 그러나 대개 레지오 단원으로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평범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참된 영웅적인 행위를 실천할 수 있는 알맞은 기회를 갖게 된다. 레지오 사도직을 수행하다보면, 신앙의 감화를 받지 않으려고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나 악의가 아닌 선의의 방문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모두 주님의 품안에 거두어들일 수는 있겠지만, 인내와 용기의 정신으로 훈련하지 않고서 이 사도직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찌푸린 얼굴, 가시처럼 쏘는 모욕과 무시, 비웃음과 적대적인 비판, 심신의 피로, 실패와 비열한 배신으로 입는 마음의 상처, 매서운 추위와 폭우, 더러움과 벌레들과 악취, 어두운 골목이나 불결한 주위 환경, 여가를 희생하는 일, 활동에서 겪는 숱한 괴로움, 신앙에 무관심한 사람들과 그들의 타락 행위를 떠올릴 때마다 예민한 영혼이 받는 고통,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온갖 슬픔 등, 이러한 모든 것들에서 매력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을 달게 참아 내고 즐거움으로 여기며 끝까지 버티어 나간다면,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바로 그 사랑의 경지에 마침내 접근하게 될 것이다.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시편 116,12)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2월호,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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