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일)
(녹) 연중 제21주일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교부들의 신앙: 단식 - 단식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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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02 ㅣ No.516

[교부들의 신앙 – 단식] 단식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1)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일 년에 두 번, 곧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단식을 합니다. 하지만 고대 교회에서는 40일 동안 엄격하게 단식하면서 저녁 한 끼만 식사했습니다. 교회의 단식은 사순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사순 시기의 역사

 

처음부터 교회는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했습니다. 3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합당하게 준비하려고 한 주간 전부터 하루나 이틀 단식을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 무덤에 계신 성토요일 그리고 부활하신 주일을 ‘성삼일’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주님의 최후 만찬을 기념하는 성목요일이 포함되면서,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 밤 전례까지가 파스카 성삼일로 바뀌었습니다. 곧이어 성주간이 생겨났습니다.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가 파스카 준비 기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의 기쁨을 50일 동안 경축하는 데 비해, 단지 한 주간만 파스카 준비 기간으로 지내는 것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3주간 동안 단식하면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의 기쁨은 50일 동안 경축하는데(부활 시기), 사순 시기는 단지 3주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4세기에 사순 시기를 제정하여 40일간 단식하면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했습니다.

 

 

단식, 사순 시기의 대표적인 수계

 

사순 시기에 신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대표적인 수계가 단식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의 강론 주제는 주로 단식과 자선이었습니다. 많은 교부가 단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단식의 절기에, 평소 항상 수행해야 하는 자비의 행위를 더욱더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대 레오 1세, 「사순 시기 강론집」, 41,3).

 

“단식의 시기보다 참회에 더 적절한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요한 크리소스토모, 「참회에 관한 설교」, 113).

 

“우리를 수많은 악에서 구해 주는 단식을 두려워하지 맙시다”(같은 책, 123).

 

“단식은 우리 구원에 맞서는 원수들을 이렇게 쫓아내고 우리 삶의 원수들에게 이렇게 끔찍한 것이니, 우리는 단식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품어 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과음과 폭식이지 단식이 아닙니다. 과음과 폭식은 우리 손을 등 뒤로 묶고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부(情婦)를 닮은 욕정의 폭군에게 종과 포로로 굴복시킵니다. 그러나 단식은 노예이자 죄수인 우리를 보고는 우리의 결박을 풀고 폭군에게서 구해 냅니다. 단식은 우리를 본래의 자유 상태로 회복시킵니다”(같은 책, 107).

 

“사순 시기는 악습의 무리와 욕망의 무질서에 저항하여 싸우는 특별한 시기입니다. 단식으로 목과 싸우고, 정결로 사치와 싸우며, 믿음으로 악행과 싸웁니다. 동정심으로 불경과 싸우고, 인내로 격노와 싸우며, 관용으로 탐욕과 싸웁니다. 자비로 인색함과 싸우고, 겸손으로 교만과 싸우며, 성덕으로 죄와 싸웁니다”(베드로 크리솔로고,「설교」, XIII,1-2, 226-231 참조).

 

 

단식의 가치

 

교부들은 단식의 가치에 대해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들어 봅시다.

 

“단식은 악습을 파괴하는 약입니다”(카이사리아의 대 바실리오, 「단식에 관한 강해」, I,1-2, 165A 참조).

 

“단식은 영혼의 원수를 물리치는 영성 생활을 위한 약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창세기 강해」, X, MPG LIII, 81-90 참조).

 

“단식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단식은 영혼을 더 활기차게 만들고 땅에서 높이 올라 천상 실재를 관망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 줍니다”(같은 책, I, 21-25 참조).

 

“만취와 탐식은 인간의 마음을 속박하고, 욕망에 인간의 마음을 노예와 죄수로 넘겨준다. 하지만 단식은 그러한 사슬을 풀고 인간에게 원초적인 자유의 운명을 회복시켜 줍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참회에 관한 강해」, V, MPG XLIX, 305-314).

 

 

참된 단식

 

단식을 하면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겠지만 영혼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한 사랑으로 영적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영적 즐거움을 누리려면 육적 단식에만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여 자신 안에 조그마한 악습이라도 결코 자리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영적 단식이 수반되지 않는 육적 단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식의 핵심은 육적 단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단식이 수반된 육적 단식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악한 본성과 격노와 증오, 논쟁과 언쟁, 해로운 악습을 끊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단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육식을 삼가는 것만 단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참된 단식은 악습을 멀리하는 일입니다. 온갖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부당한 계약서를 찢어 버리십시오. 그대에게 고통을 주는 이웃을 용서하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카이사리아의 대 바실리오, 「단식에 관한 강해」, 1,10).

 

“단식의 핵심은 음식의 절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마음이 불의에서 되돌아서지 않고 혀가 악담을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육체에 음식을 줄이더라도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대 레오 1세, 앞의 책, 4,2).

 

“육신이 음식을 단식하듯이 영혼도 악행을 단식해야 합니다”(같은 책, 12,2).

 

“단식의 경기장(jejuniorum stadio)에서 음식만 절제하면 만족스런 결과를 얻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육체에 음식을 줄이면 영혼은 강해집니다. 사람이 외적으로 약간 고통을 당하겠지만 내적으로는 영양을 섭취하게 됩니다. 육체에게는 육적 풍만이 줄어들지만 정신은 영적 즐거움으로 강인해질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서로 사방을 둘러보고 자기 마음의 내면을 엄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같은 책, 1,5).

 

* 노성기 루보 - 광주대교구 신부로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등을 펴냈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마태오 복음서 1-13장」, 「4천 년의 기도, 단식」, 「대 바실리우스-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향잡지, 2019년 3월호, 노성기 루보]

 

 

[교부들의 신앙 – 단식] 단식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2)

 

 

그리스도교 단식의 전통은 예수님의 단식을 따르고 유다교의 단식 전통과 단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인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습니다. 교회는 단식을 구약의 관점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했습니다.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단식의 차이

 

교회가 수요일과 금요일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처음부터 유다인과의 단절을 명백히 밝히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3세기 초부터 수난의 두 순간, 곧 유다의 배반이 있었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금요일을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단식은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유다인의 단식에는 하느님의 단죄를 피하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의탁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단식해서 생긴 금액을 가난한 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자선 행위를 유다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자선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있지만 말입니다.

 

“자선은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토빗 12,9).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토빗 4,7).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잠언 21,13).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며”(집회 35,4),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 두어라. 그것이 너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 주리라”(집회 29,12).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본격적으로 단식이 기도와 사랑, 자선 실천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교 단식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죄 사함을 받고 하느님 나라를 합당하게 준비하려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둘째, 세상의 제약에서 해방된 구원을 받을 자가 갖추어야 할 합당한 삶입니다. 이 같은 단식은 반드시 자선의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었습니다. 단식은 사탄에 맞선 싸움이며 고행입니다. 단식은 기도와 결합되어 주님에게로 돌아서는 회개의 표지이고, 간구를 강화하는 개별 참회 행위이며, 온갖 유혹을 멀리하고 악마를 쫓아내는 힘이 됩니다. 단식은 참회의 길이며, 단식과 고행은 영혼을 덕행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단식은 기도이며, 겸손과 인내의 덕행을 닦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실천한 이웃 사랑은 성찬 전례 거행 때 예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구원 경륜의 정신으로 단식했습니다.

 

 

영적 단식의 중요성

 

교회는 처음부터 죄를 멀리하는 영적 단식을 강조했습니다. 1-2세기에 쓰인 다음과 같은 책들에서도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카시아노는 “영적 단식을 하면 육적 단식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단식은 형제애를 목적으로 합니다. 단식은 원수들을 위한 간구의 행위이고(「디다케」), 가난한 이들과 연대감의 표지이며(헤르마스, 「목자」), 기도와 자선을 받쳐 주는 행위입니다(「로마의 클레멘스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단식은 겸손하게 해 주고(「바르나바의 편지」), 하느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목자」).

 

단식은 그리스도인을 우상 숭배로부터 멀리하게 하고(「디다케」),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희생 제물을 영성화하며(「바르나바의 편지」), 죄의 함정에서 그리스도인을 보호합니다(「목자」).

 

“영적 단식을 먼저 시작하면, 음식의 단식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곧 영혼의 통회는 몸을 억제합니다. 따라서 육체적으로 단식하면서 영혼에 해로운 악습을 버리지 않는다면, 육체적 고통인 단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죄가 계속해서 성령의 성전인 몸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카시아노, 「공주 수도승 규정집」, V,21,MPL XLIX,239).

 

레오 대교황은 우리가 육적으로 단식한다고 하더라도 영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단식하면서 우리 생활이 완전한 절제에서 오는 순결함과는 동떨어져 있다면, 불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또 우리의 잘못은 우리 종교를 모독하는 불경건한 이들의 혀를 무장시켜 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사순 시기 강론집」).

 

 

단식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

 

아우구스티노는 지나치게 초라한 옷을 입는 것이 오히려 교만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허영은 세상의 재산을 자랑삼는 화려함 안에만 있지 않고 칙칙한 삼베옷 안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 허영은 더 위험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척하며 속이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육신과 육신에 걸치는 옷을 지나치게 꾸미거나 … 화려함으로 남의 눈을 부시게 하는 사람은 … 그가 화려히 과시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쉽게 눈에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묘하게 거룩한 척 꾸미면서 속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가 매우 지저분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자신이 그리스도교를 고백하는 방식에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면, 그리고 그가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뜻에 따라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이 쓸데없이 꾸미는 일에 무관심해서인지 아니면 어떤 속셈이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인지를 그 사람의 다른 행실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주님의 산상 설교」, 2,12,41).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단식한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은 위선자들의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침통한 얼굴로 있다면, 우리는 위선자들을 본받는 것일 뿐 아니라 그들보다 더 심하게 구는 것입니다. … 제대로 단식하지 않으면서도 단식하는 이들의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을 저는 몇 명 압니다. … 왜 그대는 그대가 비난하는 위선자들보다 더 나쁜 위선을 곱절로 저지릅니까?”(「마태오 복음 강해」, 20,1).

 

 

탐식의 세 가지 특성

 

단식하면 평소보다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카시아노는 탐식의 특성에 대해 말합니다.

 

“탐식은 세 가지 특성을 지닙니다. 첫째, 규칙으로 정한 식사 시간 전에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듭니다. 둘째, 어떤 음식이든 배부를 때까지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셋째, 더 맛있는 고급 음료(음식)를 좋아합니다. 따라서 수도승은 신중하게 정해진 식사 시간을 준수하고, 고행의 한계 내에서 만족하며, 어떤 음식으로든 만족해야 합니다”(「담화집」, XXI,18,MPL XLIX,1192-1193).

 

* 노성기 루보 - 광주대교구 신부로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등을 펴냈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마태오 복음서 1-13장」, 「4천 년의 기도, 단식」, 「대 바실리우스-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노성기 루보]

 

 

[교부들의 신앙 – 단식] 단식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3)

 

 

수도자들은 하루 한 끼 식사하며 빵과 물, 또는 올리브기름과 소금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여름철에는 두 끼, 곧 점심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을 때는 주로 오후 3시에 식사했지만, 사순 시기에는 해가 질 때 저녁을 먹었습니다. 사순 시기에 수도자들은 자발적으로 ‘음식이나 음료, 잠, 말, 농담’까지 줄여 나갔습니다.

 

 

수도자들의 단식

 

“수도원에서 하는 절제는 빵과 물 심지어 자는 것까지도 만족할 만큼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폰투스의 에바그리오, 「단식」, 8).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 시기를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사순 시기에 모든 이는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 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통회와 절제를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즐거움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베네딕토, 「수도 규칙」, 49,1-7).

 

“단식이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꾸며 주는지 알고 싶습니까? 단식이 우리를 얼마나 위험에서 지켜 주고 보호해주는지 알고 싶습니까? 당부하건대, 복되고 훌륭한 수도승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소란을 피해 산꼭대기로 재빨리 달음질쳤습니다. 그들은 마치 안전한 항구에 정박하듯 적막한 사막에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단식을 벗 삼으며 함께 성체를 받아 모시는 동지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단식은 인간인 그들을 천사들로 만들어 주었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참회에 관한 설교」, 108).

 

 

자선 실천의 중요성

 

단식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단식은 음식의 절제를 통해서 자신이 지은 죄를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표지입니다.

 

둘째, 단식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표지입니다. 단식을 통해 육체적인 고통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셋째, 단식은 그리스도인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유대를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따라서 단식하여 절약한 금액을 가난한 이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자선 실천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자발적인 단식과 청빈으로 생긴 돈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을 절제하고 날마다 단식하여 심신을 맑게 하였습니다.

 

예로니모는 영성체를 준비할 때 지극한 정성으로 늘 단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아델레 스카르네라, 「4천 년의 기도, 단식」 참조). 교부들의 말을 들어 봅시다.

 

“자선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입니다. 단식이 기도보다 더 낫습니다. 그러나 자선은 단식과 기도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로마의 클레멘스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6,4).

 

“기도와 눈물과 단식은 착한 채무자의 재산이며, 모든 재산을 팔아서 만든 돈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재산입니다”(암브로시오, 「참회론」, II,IX,81, MPL XVI, 538).

 

“그리스도인은 단식하여 절약한 금액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오”(아우구스티노, 「사순 시기 설교」, CCX,10.12, 1053).

 

“가난한 이를 위해 단식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속이는 자입니다. 비록 단식은 하지만 자신의 음식을 선물로 내놓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단식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 때문에 단식하는 자입니다”(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 VIII,2, 208-211).

 

“단식은 죄의 상처를 낫게 하며, 자비는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없애 줍니다”(「설교」, XLI,3, 314-317).

 

“기도와 단식과 자비는 믿음을 뿌리내리게 해 주는 세 가지 조건입니다. 단식은 기도의 영혼이며, 자비는 단식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자비가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설교」, XLIII,2,4, 320-322).

 

막시모는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지만, 자선을 베풀 때마다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세 가지 중요한 종교적인 행위는 기도와 단식과 자선입니다. 영혼을 씻는 또 다른 방법은 자선입니다. 만일 세례를 받고 나서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죄를 지었다면, 자선 행위를 통해서 그 죄를 깨끗하게 용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죄를 더 자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자선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세례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용서도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선을 베풀 때마다 우리는 그 자선 행위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와 자선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죄를 용서해 주는 자비의 두 원천입니다. 세례와 자선, 이 두 기둥을 꼭 붙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세례를 받고 나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자선의 강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비를 얻을 것입니다”(「설교」, 22A,4).

 

예로니모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단식하는 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위에 부담이 될 정도로 음식을 많이 먹어서도 안 됩니다. … 최선을 다해 자주 성서를 읽고 모든 것을 배우시오. 그대의 손에 성서가 들린 채 잠드시오. 잠들 때에는 거룩한 말씀이 그대의 머릿속을 사로잡도록 하시오. 음식을 절제하고 날마다 단식을 하여 심신을 맑게 하시오”(「편지」, 22.17).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전통에 따라 단식하도록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단식과 절제에 관한 설교」, IV, MPG LXIII, 595-602).

 

우리가 예로니모와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과 같이 살아간다면, 그리고 자녀를 교육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 그렇게 합시다. 교부들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우리 것으로 만듭시다.

 

* 노성기 루보 - 광주대교구 신부로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등을 펴냈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마태오 복음서 1-13장」, 「4천 년의 기도, 단식」, 「대 바실리우스-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노성기 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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