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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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통일사목]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천주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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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05 ㅣ No.1150

[알아볼까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천주교회의 역할

 

 

평화를 위해 걸어온 길

 

남한 천주교회는 1984년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을 계기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남한에 초청하였다. 당시 북한 천주교회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여 200주년을 준비하는 주교회의 기구 안에 ‘북한선교부’를 설치하고 북한 신자들을 200주년 기념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하였다. 그러나 그 초대는 성사되지 못하였었다. 비록 200주년 기념행사에 북한 신자들이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남한 천주교회는 한시적 기구에 불과했던 북한 선교부를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로 상설기구화하면서 북한과의 접촉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에 이른다.

 

이윽고 1988년 10월31일 장익 신부와 정의철 신부가 교황 특사로 파견되어 장충성당에서 최초로 미사를 봉헌하였고, 문규현 신부가 1989년 6월과 7월에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고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하지만 남한 천주교회는 민간인 방북을 억제하는 정치적인 영향과 평양 장충성당 신자에 대한 진정성에 대하여 불신감으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남한 교회에서 접근하지 못하는 동안 재미 교포 사제들이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마침내 1998년 5월15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무 주교 외 6명이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이 일은 남북이 분단 된 후 한국인 주교가 북한 교회를 방문한 최초의 사목적 방문이었다. 최창무 주교와 당시 이기헌 신부, 오태순 신부는 5월17일과 21일 두 차례 장충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한국인 주교가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지역에서 미사를 봉헌한 것이다. 이때 5월17일 같은 시간에 남쪽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 성당에서 동시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이후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였고, 2015년 12월1일부터 4일까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를 단장으로 하여 ‘주교회의민화위특별회원회’ 주교 5명과 사제 4명, 주교회의 실무진을 포함하여 17명이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북측 천주교단체 대표자들과 ‘평양 장충성당 보수’와 ‘사제 파견’에 대해 협의하고 1년에 5~6회 정도 대축일에 정기적인 사제 파견에 합의한 바 있다.

 

 

인도적인 지원

 

남북 천주교회는 1990년 후반부터 인도적인 교류를 확대하였다. 그 이유는 인도적인 지원이 북한 복음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5년부터 시작한 대홍수와 가뭄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거치면서 식량부족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남한 천주교회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대북지원 사업을 실시하였다. 남한 천주교회의 대북 인도적인 지원은 북한의 공식적인 지원 요청 이전에 국제카리타스를 통해서 비공식적으로 시작되다가 199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교회의 민화위와 각 교구별과 수도회별 민화위, 정의구현사제단과 평화삼천 등 다양한 천주교 단체들이 인도적 지원 사업을 시행하여 북측에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지원하였다. 남한 천주교회의 대북지원은 긴급구호지원, 농업지원, 의료지원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원활동을 하던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북한 천주교 단체가 북한 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고 위상이 높아졌다고 증언하였다.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첫째, 한국 천주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전 세계 교회에 이 지향으로 기도를 부탁하셨다. 온 교회는 평화의 아버지시며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남한 천주교회는 1965년 2월 주교회의에서 북한교회를 침묵의 교회로 규정하고,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문’을 채택하여 바치기 시작하였다. 1992년 남한 천주교회는 춘계주교회의에서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하고, 기도문도 똑같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로 변경하여 바치게 되었다. 남한 천주교회는 매일 저녁 9시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주모경을 바치고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평화를 위해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도록 천주교 신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빌어주시라고 묵주의 기도를 바쳐야 한다.

 

둘째, 북한의 실정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접근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좋은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많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북한학을 전공하였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기에 각 교구 본당에서 대림절이나 사순절에 북한학을 전공한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초대해서 강의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북한은 변하고 있지만 한국 천주교회 내 일부는 여전히 북한을 이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면서 판단하고 있다.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회심이 필요하다. 그동안 남한 천주교회는 북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해 관심을 주지 못했다. 남한 천주교회는 그들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방치하였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목말라 하다가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에 함께 아파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하느님을 깊이 만날 수 있도록 그리고 깊은 영적 갈망을 채워 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로 서로 간에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며 상호 적대감과 증오를 넘어 분노와 보복의 심리로 증폭해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그 상처를 넘어 형제적인 사랑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래서 남한 천주교회는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를 희망하며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하느님의 어린양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바티칸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며 희망인 교황 방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북한 당국과 바티칸을 연결하는 중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연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자주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대화는 일방적으로 주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함께하는 것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진리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대화가 가능하다. 누구도 교회로부터 소외될 수 없으며, 누구도 교회의 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대화의 상대에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였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서로 간에 품고 있는 오해를 풀어 가는 의미 있는 기회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3월호, 김연수 스테파노 신부(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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