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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91: 19세기 (1) 옥스퍼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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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10 ㅣ No.124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1) 19세기 ① 옥스퍼드 운동


성공회 개혁 바람에 다시 타오른 가톨릭 신앙의 불씨

 

 

16세기 영국에서 국교회인 성공회가 출현하면서 가톨릭교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던 가톨릭 신자들과 유럽 본토에 살던 영국 출신 가톨릭 신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세기 들어 가톨릭 신앙과 가톨릭교회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공회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인해 성공회 신자들은 가톨릭 신앙과 교리를 대면하면서 자신들을 성찰하는 쇄신의 기회를 마주했는데, 이를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 1833~1841)’이라고 부릅니다.

 

영국 왕 헨리 8세.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출현과 가톨릭교회의 위축

 

영국 왕 헨리 8세(Henry VIII, 재위 1509~1547) 시절, 영국 의회가 1534년 선포한 ‘수장령’을 통해 영국 국교회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성공회는 아직 외적으로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헨리 8세의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Jane Seymour, 재위 1536~1537)의 아들이며 개신교 신자였던 왕 에드워드 6세(Edward VI, 재위 1547~1553) 시절에는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 재임 1533~1556)가 1549년 「성공회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를 영어로 작성하면서 가톨릭교회의 모습에서 벗어나 차차 종교개혁의 노선을 따르는 개신교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 카탈리나(Catalina de Aragn, 재위 1509~1533)의 딸이며 가톨릭 신자였던 여왕 메리 1세(Mary I, 재위 1553~1558)가 많은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을 처형하고 가톨릭교회로 복귀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 재위 1533~1536)의 딸이며 성공회 신자였던 여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재위 1558~1603)는 1559년 의회를 통해 다시 수장령을 선포하고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신앙은 위축됐습니다.

 

19세기 성공회에는 고교회파(High Church)와 저교회파(Low Church)가 있었습니다. 고교회파는 고대 그리스도교로부터 내려오는 사도전승을 따르고, 교회의 권위 및 전례와 성사를 강조하면서 가톨릭교회와 가까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저교회파는 교회의 권위와 성사성을 낮게 평가하며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하는 개신교에 더 가까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마침 미국과 프랑스에서 불어온 혁명 정신에 따라 영국 정부도 1829년 자유주의 분위기를 보이면서 성공회 신자가 아니더라도 공직(公職)에 나갈 수 있는 법령을 선포했는데, 주로 가톨릭 신자에게 혜택이 돌아가 ‘가톨릭 해방령(Catholic Emancipation)’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지역에서 가톨릭 신앙이 강세였기 때문에 가톨릭 해방령으로 인해 아일랜드 성공회가 가톨릭교회로 전환될 것을 두려워하고, 1833년 의회를 통해 아일랜드 성공회를 재정비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성공회 쇄신과 부흥을 주장한 옥스퍼드 운동

 

1816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된 고교회파 소속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은 1831~1841년 사이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시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영국 의회가 ‘교회 재산 법령 1833(Church Temporalities Act 1833)’을 통과시킨 것을 반대하며 1833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국가의 배신(National Apostasy)’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옥스퍼드 운동을 촉발했습니다. 키블은 정부가 교회와 교회의 재산에 간섭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사회적인 운동을 전개했으나, 주장의 정당성을 마련하고자 초대 교회와 교부들의 가르침을 연구하면서 점점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관점으로 전환했습니다.

 

특히 키블은 1825년에 성공회 사제로 서품된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2)과 함께 1833~1841년 논문집 「시국(時局) 소책자(Tracts for the Times)」를 출간하면서 고대와 중세 그리스도교 교회론과 교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전례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옥스퍼드 운동은 ‘소책자 운동(Tractarianism)’이라고도 불렸으며, 함께 했던 사람들은 ‘소책자 운동가들(Tractarians)’이라고 불렸습니다. 뉴먼은 원래 저교회파 배경에서 성장했는데, 고교회파 소속 성공회 사제와의 친분을 계기로 고교회파 교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뉴먼은 1841년 발간된 소논문집 90호에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결정했던 사항들이 영국 국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와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성공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뉴먼은 1842년 리틀모어(Littlemore)로 물러나 추종자들과 함께 준(準) 수도 공동체를 만들어 살다가 1845년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했습니다.

 

또 다른 성공회 사제인 에드워드 부브리 퓨지(Edward Bouverie Pusey, 1800~1882)는 소논문집 발간 초기에 옥스퍼드 운동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836년 키블과 뉴먼을 초빙해서 「교부 문고(Library of the Fathers)」 편집 계획을 세우면서 옥스퍼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퓨지는 1841년 뉴먼이 낙향하자 옥스퍼드 운동의 중심인물이 됐습니다. 퓨지는 1843년 ‘참회자에게 위로인 성체 성사(The Holy Eucharist, a Comfort to the Penitent)’를 주제로 설교하고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2년간 설교 금지 처분을 받았으나, 1846년 ‘참회자의 완전한 사죄(The Entire Absolution of the Penitent)’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성사론과 참회의 제도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 존 헨리 뉴먼 추기경.

 

 

가톨릭 교리와 거의 일치하는 주장을 펼친 옥스퍼드 운동가들

 

결국, 저교회파에 속한 성공회 성직자들은 옥스퍼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이적행위를 했다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특히 소책자 운동가들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뉴먼이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하던 시기의 추종자들을 경멸하며 ‘뉴먼주의자(Newmanites)’라 불렀으며, 퓨지가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하던 시기의 추종자들에게는 ‘퓨지주의자(Puseyites)’라고 비난했습니다.

 

옥스퍼드 운동에 대한 영국 국교회의 박해는 가톨릭 교리와 일치하는 주장을 하는 운동가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1845년 뉴먼은 가톨릭교회로 개종했으며, 옥스퍼드 운동에 함께했던 일부 운동가들도 가톨릭교회로 개종했습니다. 하지만 키블과 퓨지 등은 성공회에 계속 남아 옥스퍼드 운동을 지속했습니다. 이외에도 성공회 내에서 옥스퍼드 운동을 지속하던 운동가들은 가톨릭 교리와 거의 일치하는 자신들의 사상을 성공회가 보편 교회로 나갈 수 있는 가르침이라고 언급하면서 ‘영국 국교회 가톨릭주의(Anglo-Catholicism)’를 주장했습니다.

 

옥스퍼드 운동은 과거 정치적인 상황에서 출현한 영국 국교회가 여전히 정치적인 상황에 안주하면서 종교로서 본연의 모습과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반대하고, 진정한 영적 보화를 찾고자 한 종교 개혁적인 교회 쇄신과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에 참여했던 성공회 성직자들이 가톨릭 교리에 가까운 사상을 펼쳤기에, 옥스퍼드 운동은 성공회 신자들에게 가톨릭교회를 친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며, 영국에서 가톨릭교회가 복원돼 가톨릭 영성을 실천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9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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