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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니멀 라이프, 버리기 또는 가치 있게 채우기: 왜 미니멀리즘에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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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5 ㅣ No.1475

[경향 돋보기 - 미니멀 라이프, 버리기 또는 가치 있게 채우기] 왜 미니멀리즘에 주목하는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란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지고 생활하는 방식인 ‘미니멀리즘’(minimalism, 최소 주의)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디 미니멀리즘이란 용어는 미술, 건축,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형태나 색채를 최소한으로 줄여 대상의 본질만을 추구한 문화적 흐름을 뜻했습니다. 예술계에서 쓰이던 이 용어는 이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삶의 양식이나 태도, 가치관을 말할 때도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간의 이목을 끈 미니멀리즘

 

이 새바람의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그중 하나는 2011년에 발생한 일본 대지진입니다. 집안에 쌓아 두었던 물건이 흉기로 돌변하여 생명을 위협하고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일본인들이, 소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의 저자 유루리 마이가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미니멀리즘과는 정반대로 살던 그녀는 대지진을 계기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고, 이를 만화로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리 컨설턴트인 곤도 마리에는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설레지 않는 것은 모두 버려라.”라고 말하며,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나면,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참된 삶으로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2011년 일본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리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미니멀리스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잘나가던 회사에 돌연 사표를 던지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 뒤 2010년 ‘미니멀리스트’라는 누리집을 운영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끕니다.

 

이들은 짐을 모두 모아 놓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물건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제야 인생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이들은 고백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주변을 물건으로 가득 채웠음에도 마음은 늘 허전했고, 스트레스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며, 돈이나 물건이 반드시 행복과 직결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부터 ‘미니멀리즘’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번역서가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계발’이나 ‘힐링’, ‘멘토링’ 등의 책들이 출판계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이 지속되자 ‘미니멀리즘’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합니다.

 

 

소유의 삶에서 비우는 삶으로

 

이처럼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계기로 일었지만, 공통된 맥락은 ‘소유를 지향하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 자산을 모으고, 생필품을 넘어서 사치품과 차, 집과 같은 소유물을 늘리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려고 직장에서 열심히, 오래 일하는 것을 당연히 감내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가?’를 삶의 큰 화두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돈을 모으면 그 보상을 소비에서 찾았습니다. 그 결과 집안에는 온갖 물건들로 넘쳐나지만 통장 잔액은 늘 부족하며, 카드 빚에서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개인의 무분별한 지출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저성장으로 말미암은 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해 가며 열심히 일하더라도, 먹고살 걱정을 늘 놓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융 위기는 힘겹게 모은 재산을 한순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합니다. 장기간의 노동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와 해소되지 않는 경제적 불안감도 여전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지금까지 행복이라 믿었던 삶의 방향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소유가 미덕인 사회는 소유물이 곧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누리 소통망(SNS)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찍어 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시기와 질투심에 사로잡힙니다. 타인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로 괴로워하며 소유에 대한 환멸도 느낍니다. ‘언제든 잃어버리거나 가치를 상실할 수 있는 소유물이 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가?’ 하고 자신에게 물으며 고민합니다.

 

경쟁이 절대 가치이며 소유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의 폐해를 피부로 느낀 사람들은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타인의 시선과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모습과 진정한 행복을 찾아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니멀리스트들은 미니멀리즘을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그 자리에 가치 있는 것을 채우는 것”이며,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나면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더불어 사는 삶’일 것입니다. 정리력 온라인 동호회 회원들의 사례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회원들은 비우고 버리는 것에 앞서 먼저 환경에 관심을 둡니다. 자주 올라오는 질문은 ‘올바르게 물건들을 버리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회원들은 물건을 비우면서 자연스럽게 낭비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아가 환경에 피해가 가지 않게 버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비워지는 물건들이 재사용 또는 재활용되며, 되도록 자연으로 환원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도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가’를 자문하고, 그렇게 집에 들어온 물건은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버리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불필요한 물건은 공짜라 해도 과감하게 거절합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음식물들이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염려하며, 진수성찬보다는 소박한 두세 가지 반찬으로 먹는 법을 익힙니다.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환경 보호’를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불필요하다고 해서 멀쩡한 물건들을 버리는 것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마음은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정리력 온라인 동호회의 인기 글은 기증 후기입니다. 사회단체에 물건을 기부한 회원들은 훈훈한 기증 후기를 남깁니다.

 

정리 컨설팅을 하면서 비움을 망설이는 고객에게 “어려운 이웃에게 대신 기증해 드릴까요?”라고 하면 흔쾌히 내어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도 기증될까요?” 하고 말하며 비우기에 박차를 가합니다. 맹목적인 소유욕보다는 이 물건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나누는 것은 물건만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고 그것을 유지하느라 들였던 시간과 돈, 에너지도 함께 나누게 됩니다. 실제로 장난감을 줄였더니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거나, 텔레비전을 없앴더니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사색할 여유가 생겼다는 분도 있습니다. 다달이 카드 값을 메꾸느라 엄두를 못냈던 가족 여행을 위해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는 회원도 있고, 기부금을 내기 시작했다는 회원도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고 돈을 모으고, 쓰게 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즘이 큰 관심을 모은 이유는 이에 공감하고, 실천할 만한 가치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채우려고 하다보니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물건을 비우면 소유하는 데 들이던 시간과 돈, 에너지를 또 다른 경험과 활동에 쓰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소유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기 존재의 확장이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비움은 경쟁 심리와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비우면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타인과 경쟁하고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대신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게 됩니다. 한 빅데이터 업체에 따르면, SNS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든 게시물을 분석해 본 결과 인간관계를 통해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과시욕과 소유욕이 잘 드러나는 공간인 SNS에서도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경험을 통해 존재하며, 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비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와 미니멀리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 윤선현 -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 「하루 15분 정리의 힘」, 「아이의 공부 습관을 키워주는 정리의 힘」 등의 책을 펴냈다. 방송과 기업,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강연을 하며 ‘정리의 힘’을 알리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윤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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