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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엘라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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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389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 이야기] 엘라의 계곡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헌병대 수사관 출신으로 두 아들의 아버지다. 전역한 지 오래됐지만 군인정신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삶에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애국심도 여전하다. 관공서 앞에 국기가 뒤집혀서 걸려있는 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서라도 뒤집힌 걸 바로잡는 그런 사람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야기

 

그는 군과 전우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군대에 가서 전우들과 함께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아내가 극구 반대했어도 기어이 두 아들을 모두 군에 입대시켰다, 군인정신을 배워 진짜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오라고.

 

하지만 공수부대에 입대했던 큰아들 데이빗은 10년 전에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은아들 마이크는 보병으로 이라크에 파병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나흘 전에 아들이 미국으로 복귀했는데, 부대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일요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탈영으로 처리된다는 통보였다. 행크는 수사관 경험을 살려서 아들을 찾아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대 근처의 잡초덤불이 무성한 공터에서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다,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시신은 토막 내 불에 태운 상태였다. 잘려나간 시신은 날짐승들의 먹이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뼈에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칼에 42번 이상 찔려서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행크를 도와 수사를 진행하는 여형사 에밀리 샌더스(샤를리즈 테론)는 마이크의 전우들을 의심한다.

 

하지만 행크는 전우애를 모르는 사람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에밀리의 생각을 일축한다.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함께 지켜줬던 전우들끼리는 서로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크의 믿음은 얼마 가지 못해 깨져버리고 만다. 아들은 전우들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지옥 같았던 전쟁터에서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고국으로 귀국한 뒤에 살해당한 것이다.

 

살해의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대 밖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명이 마이크를 찌른 것이다. 누군가는 시체를 토막 내서 태우자고 했다. 시체를 묻어버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배가 고파서였다. 그래서 전우의 시신을 그냥 공터에 버려두었다. 그러고는 허기를 달래러 치킨 가게로 갔다.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를 살해하고도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살인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귓가에 맴도는 마지막 통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폴 해기스 감독의 2007년 작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에서는 착하고 순진했던 아들이 부모가 기대했던 것처럼 전장에서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났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의 휴대전화에 촬영된 동영상에는 공을 잡으려고 차도로 나온 이라크 소년을 상당한 거리에서 발견하고도 의도적으로 속도를 더 내서, 장갑차로 치고 그 위로 넘어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운전자는 마이크였다. 장갑차로 이동할 때는 전방에 무엇이 나타나든 멈추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멈춰서면 잠복해 있던 게릴라가 나타나서 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년을 발견하고 멈칫하는 마이크에게 조수석의 동료는 멈추지 말라고, 속도를 더 내라고 소리친다. 병사들은 전쟁터라는 지옥에서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상당한 포로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포로의 극심한 통증을 즐기고, 불에 타죽은 시신의 이마에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으면서 조롱한다.

 

아버지 행크의 귓가에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계속 맴돈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새벽에 받은 전화였다. 아들은 울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소년을 장갑차로 쳐서 죽인 뒤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라크의 부대 막사에서 전화를 건 마이크는 울먹이며 말한다. “제발 저를 여기서 좀 꺼내주세요!” 행크는 그냥 겁이 나서 그런 거라고 아들을 위로한다, 전쟁터에서 겁이 나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고. 행크는 굳은 마음으로 시련에 맞서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시련을 극복한 뒤에 더 멋진 사내로 성장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크는 자신을 꺼내달라면서 울먹이는 아들의 말을 단순한 성장통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왜 알지 못했을까

 

사실 당시 행크는 아들의 우는 모습을 동료들이 알아챌까봐 더 걱정이었다. 군대 가서 힘들다고 새벽에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이라니. 전우들에게 겁쟁이로 찍힐까봐 걱정스러웠다.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병사들도 전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스럽다. 왜 그때 아들이 엄청난 심리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아들은 분명히 살려달라고 말했는데. 왜 그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들을 지옥에서 꺼내주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은 다른 사람도 맛있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은 다른 사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이 경험하게 될 것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추론은 얼추 맞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비슷하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도 하다. 문제는 특히 자신이 생각하는 경험의 강도와 다른 사람이 실제로 체험하는 경험의 강도가 크게 다를 때 발생한다. 행크도 아들의 군대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발 지옥에서 꺼내달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적응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성장통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자신도 그걸 경험했고, 결국은 극복했으니, 아들도 이런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처럼 제대로 된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공포심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에밀리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은 행크. 그는 에밀리의 어린 아들 데이빗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군대가 엘라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편 언덕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전사 중에 골리앗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이 있었다. 그는 40일간 날마다 엘라의 계곡으로 내려와 일대일로 자신과 싸우자고 상대 진영에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라는 이스라엘 소년이 형들이 있는 진영에 빵을 가지고 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임금에게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노라고 말한다. 임금은 다윗에게 갑옷과 칼을 주었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서 다윗은 모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던 조그만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서 골리앗이 기다리고 있는 엘라의 계곡으로 내려간다.

 

골리앗이 엄청난 괴성을 지르면서 다윗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윗은 돌팔매질로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를 맞혔다. 골리앗은 땅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쓰러졌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서 그의 목을 베었다.

 

행크는 데이빗에게 다윗은 자기 자신의 공포심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골리앗이 괴성을 지르면서 엄청난 기세로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데도 꿈쩍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골리앗이 돌팔매의 사정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침착하게 마주보고 서있다가 이마 한가운데로 돌팔매를 냉정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던 용기.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실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멘도(역량, 지식, 지혜, 긍정적 가치관을 고루 갖춘 상담가, 지도자, 스승님, 선생님 등의 의미)의 위치에는 성공적으로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만이 오를 수 있다. ‘멘토’와 ‘힐링’(몸과 마음의 치유)의 시대에 멘토들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당신도 다윗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자신에게도 시련이 있었지만 참고 노력한 덕분에 자신ㄷ 다윗처럼 승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멘토들의 격려는 힘을 분다.

 

하지만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격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참고 견디어 노력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건져내 목숨을 살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윗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다윗은 엘라의 계곡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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