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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아카데미: 장애인도 동네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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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3 ㅣ No.1808

[사회교리 아카데미] 장애인도 동네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생각할 때

 

 

어릴 때 우리 동네엔 어딘가 좀 모자란 형이 있었습니다. 분명 형인데 우리 또래에겐 놀림감이었습니다. 아무리 놀리고 구박해도 웃었고 우리들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돌아보면 지적장애인이 분명합니다. 과거엔 ‘정박아’라고 불렸지요. 그땐 장애인인 줄 몰랐고 그저 지지리 못난 구박덩어리로 봤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해하거나 타인을 해치거나 불편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온 동네 놀림감이었으니 가족들은 애간장이 탔을 것입니다. 그래도 동네와 가족을 떠나 시설에 격리(?)되진 않았습니다.

 

이처럼 그땐 ‘동네 공동체’가 장애인을 품었고 동네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살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세상이 좋아졌고 사회가 발전했고, 풍요롭다지만 장애인을 ‘동네’가 품지 않고 시설에 격리, 집단생활을 하게 합니다. 지금 저는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에서 그들과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떠나 살거나 가족들이 친권을 포기했거나, 이미 홀로되어 외롭고 고독하게 살고 있습니다. 말이 ‘생활시설’이지 아무리 봐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동네’에서, 가정에서 합법적으로 격리해버린 겁니다.

 

예수님 시대도 장애인은 ‘동네’가 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애를 가진 상황을 동네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음이 성경 곳곳이 말해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예리코에서 소경(시각장애인이라고 해야 함)을 치유하고 함께 살자 하지 않고 다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46-52)고 합니다. 장애를 치유한 후 격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눈뜨게 된 그를 다시 ‘동네’로 보낸 것이지요. 당시는 지금처럼 장애인 생활시설이 없어서 ‘동네 공동체’가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살기 좋아졌다며 장애인을 생활시설에 수용(?), 격리하여 가족과 동네 공동체와 거리를 두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간추린 사회교리」 149항)입니다. ‘장애인들도 모든 권리를 가진 주체이므로, 자기 능력에 따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게 도움받아야 합니다. 실질적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그리고 도덕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며, 애정과 관심과 친밀감이 필요합니다.’(〃 148항) 그러나 현실은 장애인들이 격리 수용되어 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합법적 배제(排除)임이 분명하고 차별입니다.

 

5월, 곳곳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계절,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생각합니다. 풍요한 세상이라며, 동네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들을 품지 않고 가정과 격리하면 풍요의 의미는 뭘까요? 그들이 권리를 분명히 보장받고 존엄을 느끼는 날은 올까요? 4대강에 쏟아부은 비용, 남·북의 긴장 유지와 권력유지에 쓰는 엄청난 군사비용의 조금을 그들의 권리 보장에 쓸 수 없을까요? 무기 비용을 줄이고 그들을 위한 정책에 쓰면 어떨까요? 과거처럼 약자들이 동네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격리 수용(?) 시스템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칠까요? 격리하고 차별하는 것, 적폐이며 청산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요? 도대체 국가의 의무란 무엇일까요? 제가 지금 낭만 소설을 쓰는 것일까요?

 

* 양운기 수사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14일, 양운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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