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0일 (금)
(녹)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성경자료

[신약] 예수님 이야기4: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 놀라운 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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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07 ㅣ No.361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4)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① 놀라운 전갈


주님 탄생 예고에 깜짝 놀란 산골 처녀 마리아

 

 

- 나자렛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 전경.

 

 

루카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에 이어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합니다. 루카는 이 일이 ‘여섯째 달’에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1,26) ‘여섯째 달’이란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 달 되었을 때를 가리킵니다.(1,36 참조)

 

나자렛은 오늘날 큰 도시이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동네였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나자렛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이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1) 하고 콧방귀를 뀐 것으로 봐도, 나자렛은 당시에 정말 별 볼 일 없는 산골이었을 것입니다. 또 나자렛이 속한 갈릴래아 지방은 유다의 주류 사회에서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변방이라고 무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즉 예수님 탄생 예고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무대는 소외된 이방인 지역의 보잘것없는 산동네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

 

이 마을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라는 처녀를 찾아가게 하십니다.  이 처녀는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유다 사회에서는 남녀가 12살이 넘으면 약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약혼한 후에도 1년 정도 친정에서 살다가 신랑을 맞아 초야를 치른 후에 신랑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마태오복음 25장 1-13절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는 유다 사회의 이런 풍습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지요. 마리아는 약혼은 했지만 아직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은 처녀였습니다.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다윗 집안”(1,27)이었습니다. 다윗은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을 이민족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대하면서 그분이 다윗의 자손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루카는 요셉이 그 다윗 집안의 후손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름없는 촌락에서 살아가는 몰락한 후손인 것 같습니다.

 

 

왜 성전이 아닌 집에 나타났나?

 

-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성화.

 

 

천사는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인사합니다.(1,28)

 

우선 ‘집'이라는 단어를 주목합시다. 요한 세례자 출생 예고에서는 천사가 성전 ‘주님의 성소’에서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1,11). “하느님을 모시는”(1,19)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집인 성전 성소에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천사가 나타난 곳이 마리아의 ‘집’, 사람들이 삶의 보금자리인 집입니다. 이 차이를 두고 성경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요한 세례자의 시대까지인)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거처하셨지만, (예수님의 시대인) 신약 시대에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다는 식으로 풀이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과 성찰을 해봅니다. 이런 풀이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성찰은 어떤지요? 주님께 기도하기 위해 주님이 계시는 성전 곧 성당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우리의 일상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 1,14) 그러니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사람들 속에서 말씀이신 주님을 만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기뻐하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의 핵심은 ‘기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기뻐하라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에게 주님은 누구일까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 잘못에는 책벌을 가하시지만 분노에 더디시고 한결같은 자애로 지켜주시는 그 하느님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기뻐하라’는 천사의 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찰 거리를 제시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실 때,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그리고 기도할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굳게 믿고 있는지요? 믿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처럼 또한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 우리 삶의 원천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마리아

 

천사의 인사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랍니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 생각하지요. 그러자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1,30)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첫 인사를 하면서 이름 대신에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마리아가 깜짝 놀랄 내용들을 전합니다.(1,31-33) ① 처녀인 마리아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주님은 도움(구원)이시다’ 또는 ‘주님께서는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② 그 아들이 큰 인물이 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란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로 불린다는 것이지요. ③ 이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왕(聖王)으로 떠받드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받아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고 그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 집안’이란 바로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12지파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12살 산골 처녀에게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전갈에 마리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

 

 

알아둡시다

 

마리아는 ‘높임을 받은 이’라는 뜻이고, ‘요셉’은 ‘하느님께서 보태주시다’(창세 30,24 참조)라는 뜻입니다.

 

 

되새기기

 

1) 우리는 일상에서, 나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2)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천사의 인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기뻐하라’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요?

 

 

나자렛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46㎞, 갈릴래아 호수에서 서남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름없는 산골이었지만 오늘날 인구 7만 5000명이 넘는 큰 도시를 이루고 있으며 대다수가 아랍인이다. 이들 가운데 약 70%는 무슬림, 30%는 그리스도인이다.

 

나자렛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 탄생을 알린 곳에 세워졌다는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을 비롯해 목수 요셉의 작업장이 있었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살았다는 곳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성가정 성당이라고도 함), 마리아가 물을 긷곤 했다는 마리아의 우물, 나자렛 회당 터 등이 있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하는 순례객들이 반드시 순례하는 도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5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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