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화ㅣ우화

[용서] 범죄자와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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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1 ㅣ No.499

범죄자와 안경

 

 

1991년 10월 한 청년이 여의도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이 광란의 질주는 어린 생명 둘을 앗아 갔고 열일곱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

 

심한 저시력증을 앓던 스무 살 청년.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다. 그에게 사회는 냉담했다. 많은 회사들이 그가 필요할 때 잘해 주다가도 안정이 되면 시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내쫓아 버리곤 했다. 수없이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는 좌절했다. 마음 속에서는 야속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일었다.

 

그는 굳은 마음을 먹고 여의도 광장 한복판에 차를 정지시켰다. 여기저기서 행복한 노랫소리가 들여 왔다. 그는 거세게 시동을 켰다. 그리고 앞을 향해 액샐러레이터를 콱 밟았다. 야속한 세상을 향한 복수는 엉뚱하게도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을 낳았다.

 

몇 차례의 재판 결과 청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정에는 손주를 잃은 할머니도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재판을 받으러 나오던 그가 눈이 어두워 발을 잘못 디디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 할머니는 교도관에게 안경을 하나 내밀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경을 전해 주세요."

 

그러자 교도관은 손자를 죽인 사람에게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느냐고 물었다.

 

"벌은 내가 주는 게 아니라 하늘이 주는 것이지요."

 

할머니는 용서의 눈빛을 보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5년 뒤, 청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5년의 세월 동안 할머니가 건네 준 안경으로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떠했을까? 그는 세상과 화해를 하고 떠났을까?

 

[편집부, 월간 좋은 생각, 2001년 8월호,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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