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경자료

[구약]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다섯 번째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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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2-13 ㅣ No.6830

[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다섯 번째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

 

 

이스라엘만큼 주변 제국들의 힘에 부대껴 시련을 겪은 민족도 드물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세계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법한 그런 거대한 제국들의 그늘엔 언제나 이스라엘이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이스라엘은 늘 그런 제국들 싸움에 휘말려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백성들은 쫓겨나고, 도망가고, 유배당하며 ‘약속의 땅’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 도처로 흩어진 유다인들이 곳곳에 모여 이룬 공동체를 그리스어로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때는 바빌론 유배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갈라진 왕국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종교 박해(기원전 2세기)를 행했고, 이로 인해 수 많은 유다인들이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가게 되는데, 이집트 지역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는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1세기 그곳의 인구 가운데 40%가 유다인들이었다고 한다. 과장인 듯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그곳의 인구가 당시 100만 명이었다고 하니,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유다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인가. 어쨌든 당시 이미 이스라엘 본토보다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사는 이들이 더욱 많았다고 하니, 우리는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며 살았던 유다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유배 때에도 그랬지만, 다른 민족들의 도시에 자리 잡고 살면서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무엇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많은 종교들 속에 혼합주의의 위험이 있었고, 예배를 드릴 성전도 율법에 따라 부정을 씻어줄 사제도 없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주인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지 못했던 백성들이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영향 좀 받으며 더불어 산다고 한들 누가 그들을 그리 질책하겠는가 싶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유배 이전의 백성들이 아니었다. 이전의 왕국 시대 때에는 예언자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듣지 않던 이들이, 유배의 시련을 겪은 후 놀랍게 변화되었다. 그들은 그 고난 속에서 신앙에 의지하는 법을 익혔고, 타지에 살면서도 다른 민족들과 뒤섞이지 않는 법을 익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들이 주권을 가졌을 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더니, 주권을 잃어버리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이제 그들 신앙의 초점은 율법 준수로 옮겨진다. 성전도, 사제도 없었기에 생겨난 결말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주체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갔다. 특히 안식일과 할례, 음식 규정과 정결 규정은 이방인의 땅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 줄 핵심적인 규정이 된다. 그들에게 이러한 규정들을 준수하는 것은 유다인과 이방인을 분리하는 정체성의 표지였으며, 신앙고백의 행위이자 신앙을 드러내는 징표였다. 누군가가 안식일을 지켜 활동을 멈추고, 음식 규정을 지켜 재료를 가리고, 정결 규정을 위해 손을 씻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이방인인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 유다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행위는 그들의 신앙을 드러냈고, 이는 결국 그들을 유다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지켜주는 수단이 되었다.

 

아마 누군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말했을 것이다. ‘유다인들은 참 별나다’. 하지만 그런 별난 모습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이방 민족들 안에서도 당신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흡족하지 않으셨을까? 그럼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 속에서 좀 별나게 살 수는 없는가?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남들과는 다르게, 별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 눈에 별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2023년 12월 10일(나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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