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말 · 일제시기 소의학교의 운영과 천주교회의 인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29 ㅣ No.1571

한말 · 일제시기 소의학교의 운영과 천주교회의 인수

 

 

Ⅰ. 머리말

Ⅱ. 한말 사립 소의학교의 설립과 교육

Ⅲ. 일제의 사립학교 규제와 소의학교의 개편

Ⅳ. 맺는말 

 

 

국문 초록

 

한말·일제시기 한국천주교회의 교육은 뮈텔 주교의 사목 방침에 따른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소학교’ 체제였다. 1890년대 한국천주교회는 대한제국 정부의 근대 고등교육 기관 설립의 의지에 따라 실업학교, 고등교육 기관 설립이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만, 교육을 담당해줄 수도회 초빙 실패로 무산되었다. 이후 천주교회는 일제의 식민 지배가 가속화되던 1909년에서야 일제의 사립학교 통제정책에 따른 대응 차원에서 설립된 베네딕도회의 숭신학교, 숭공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의 탄압과 원산 대목구 설정에 따라 각각 폐교되고 말았다.

 

한국천주교회의 상급교육 기관 설립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하였다. 1922년 서울 대목구가 지금의 동성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소의상업학교를 인수하면서 초등교육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성중·고등학교의 역사 속에서 전신인 소의학교, 소의상업학교가 잘 드러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은 1908년 소의학교의 설립과 운영, 일제시기 소의상업학교로의 개편 과정 그리고 1922년 서울 대목구의 소의상업학교 인수과정을 살펴보았다.

 

1908년 사립 소의학교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 강제 체결 이후 국권 회복을 목표로 설립된 여타 사립학교가 그러하였듯이, 교육 진작을 위해 서소문 밖 지식인과 상인들의 노력으로 설립되었다. 소의학교는 설립 취지인 국민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기본금과 기부금으로만 운영하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일제의 사립학교 규제로 운영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1910년대 소의학교의 재정적 어려움은 계속되었지만, 약종업에 종사하던 방규환과 후쿠시마 후쿠노스케의 도움으로 소의상업학교로 개편하며 학교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서 재정적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으로 다다랐고, 폐교를 막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교장 방규환이 서울 대목구에 학교 인수를 타진하게 되었고, 1922년 서울 대목구가 천주교 유지인사들의 도움으로 인수하기에 이르러 남대문상업학교, 동성상업학교를 거쳐 지금의 동성·중고등학교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동성중·고등학교의 기원과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사 연구 제61집, 202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이민석(한국교회사연구소 선임연구원)]



파일첨부

3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