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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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스페인 톨레도: 하느님 사랑을 품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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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630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스페인 톨레도


하느님 사랑을 품은 도시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 종교가 없어도 누구에게나 친숙한 작품이 가득한 유럽은 전 대륙이 미술관이다. 유럽의 예술은 왕궁이나 종교와 함께 발전했기에 궁전, 성당 등에 많은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대학교 시절 서양미술사 강의에서 배운 작품들을 직접 확인하고자, 나는 유럽 여행의 1차 목표를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2차는 유명한 성당에 있는 예술품으로 정하였다.

 

 

성화화가 엘 그레코의 자취를 찾아

 

깔끔한 현대 미술을 좋아하던 나는 성당에 다니면서 성화에 눈을 떴다. 신입 교리교사 연수를 가서야 종교적인 그림을 성화(聖畵)라 일컫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화는 성경내용을 예술가의 손으로 재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성화를 찾아서 보았는데, 수많은 예술가 가운데 마음에 남은 작가는 엘 그레코였다.

 

엘 그레코(1541?~1614년)는 그리스 크레타 섬의 칸디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이지만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로 불렸다. 베네치아에서 지도를 받고 화가가 된 그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에스파냐(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가 되었으나, 그의 화풍이 왕의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궁정화가로 톨레도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렸고, 왕궁에서 떠난 뒤에도 톨레도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나는 그가 활동하던 톨레도에 가보기로 했다.

 

톨레도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 70km 지점에 있는 관광도시로,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식민도시가 되었다가 6세기에 서(西)고트 왕국의 수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711년 이슬람 왕국에 정복되었지만 레콩키스타 운동으로 1085년 탈환되었다.

 

아침에 서둘러 일어나 기차를 타고 톨레도로 출발했다. 기차가 스페인 땅을 달리니, 강렬한 태양 때문인지 차창 밖은 나무와 흙으로 빛바랜 색깔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톨레도 기차역은 아담했고, 내부엔 세심한 무늬로 장식되어 예스러움이 풍기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 저 멀리 언덕 위를 보니 ‘정말 근사한 도시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은 강을 따라 도시를 향해 걸으니 맑은 하늘이며 예스러운 도시가 강물에 비치어 경치가 예술 그 자체다.

 

 

타임머신 타고 중세로?

 

처음 들어간 곳은 산타크루즈 박물관. 엘 그레코가 살던 도시라선지, 전시된 그림 중에 역시 그의 작품이 많았다. 박물관을 나와 중앙광장을 지나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여행안내 지도를 보며 대성당으로 가는 길가에는 가게들이 빼곡한데, 거의 모든 쇼윈도에 갑옷이며 검이며 칼 등 중세 기사의 물품이 가득했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돌아가 금세라도 말 탄 기사들이 등장할 것 같았다.

 

드디어 대성당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성당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여서 가방을 단단히 잠그고 입구를 통과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부셨다. 햇볕이 들어와서가 아니라, 내부장식이 모두 금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많은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부는 밝았다. 제대 앞 장식은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했고, 성가대석도 마찬가지였다.

 

톨레도는 옛날 이슬람과 가톨릭이 대립할 때 거의 마지막으로 전쟁이 일어난 곳인데, 그 전쟁에서 가톨릭 세력이 승리한 기념으로 이 대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당의 화려함으로 승리의 기쁨을 짐작할 만했다. ‘하느님 안에서 승리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구나! 그 벅찬 기쁨을 하느님께 올리고자 이렇게 만들었구나! 정말 하느님 안에서의 승리는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선의 시작은 하느님의 사랑

 

이어서 산토 토메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은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경향잡지 2005년 1월호 116쪽 참조)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고 하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를 표현한 이 그림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보러 온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걸려있는 그림을 보며 묵상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하느님께 가는 일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가기 전 현세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선을 베풀며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 있을까?

 

문득 여행 오기 직전의 일이 떠올랐다. 친구, 은인, 친척 등을 찾아가 안부 인사를 하러 다녔는데, 개중에 선뜻 여행비를 주신 분들이 계셨다. 적은 돈이면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다가 보답을 해드리련만, 그러기에는 액수가 많았다. “네가 여행 뒤에 성장하고 돌아온다면 그 돈은 아깝지 않아.” 그분들이 돈을 건네며 하신 말씀이었다.

 

그 만남을 떠올리며, 나는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자선의 자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는 것을 계산하거나 아까워하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상대방이 하느님께 더 다가가거나 더 발전하고 행복해진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는 자세.

 

그분들이 나에게 그리 해주신 것도, 나를 믿고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베풂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사랑하기에 내 것을 내주어도 행복한 마음. 나중에 받으려고 계산해서 주는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내어줌으로써 진정한 사랑이 싹트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다. 성당에 앉아 기도하면서, 나도 사랑을 품고 더욱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소박하고도 화려한 도시

 

성당에서 나와 역 쪽으로 내려갔다. 톨레도가 금속 수공예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작은 초 받침을 사러 가게에 들렀다. 내가 머뭇거리자 가게 아주머니는 가격을 계속 낮추면서, 보기만 하고 사지 않아도 된다며 이것저것 다 꺼내 보여주셨다. 분명 팔려는 의도였겠지만 아주머니의 행동을 보고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갈수록 좋은 물건이 나왔고, 초 받침 두 개를 고르니 아주머니도 뿌듯한 눈빛과 예쁜 미소로 고맙다고 하셨다.

 

버스를 탄 뒤에도 아주머니의 “엘레강스, 로맨틱!”이라는 말과 예쁜 미소가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예스러움이 풍기는 도시여서인지, 상인의 그 마음이 소박하게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작지만 안에 품은 것들은 화려하고 알차고 대단하고 예술적인 도시. 천년이 넘도록 하느님을 품고 지내온 도시라서인지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 손채성 미카엘라 - 서울 독산동성당에서 6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20대의 마지막에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웹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글 ? 사진 손채성 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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