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영화 도희야 - 폭력의 속성에 대한 고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21 ㅣ No.739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영화 ‘도희야’


폭력의 속성에 대한 고발



- 영화 ‘도희야’ 한 장면


우리는 종종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일이 번져나가는 경우에 놓이곤 한다. 그렇게 상황이 번져나가면 처음에 일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희미해지고 단지 어려운 뒤처리만 남아 골치를 썩기 마련이다. 원인은 사라지고 결과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귀찮아 보이는 일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어디 세상만사가 맘대로 돌아가던가? <도희야>(정주리 감독, 극영화, 한국, 2013년, 120분)에서 영남(배두나)의 경우도 꼭 그렇다.

경찰대학까지 나와 안전한 출셋길이 보장되어있던 영남은 바닷가 시골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된다. 좌천 이유가 워낙 민감한 것이기에 그저 한 1년간 시골에서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할 팔자였다. 그런데 부임 첫날 도희(김새론)를 만나면서 그만 일이 묘하게 꼬이고 만다. 도희에게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폭력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도희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 했다는 편이 옳을지 모르겠다.

마을의 실제적인 힘은 용하(송새벽)가 틀어쥐고 있어 누구도, 심지어 경찰관들도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 여긴다. 도희는 바로 용하와 재혼했다가 도망친 여인의 딸이다. 용하와 도희는 부녀 관계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도희를 돕겠다고 나선 영남의 선택은 처음부터 위험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정주리 감독은 <도희야>에서 폭력이 갖는 속성을 제대로 고발한다. 폭력의 끝에 가면 지배욕과 탐욕이 서 있고 이를 만족시키느라 무자비한 행동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동반된다. 그리고 폭력의 반대편 끝에는 잔인하게 당해야만 하는 약자가 서 있다. 김새론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감정 변화의 폭이라든가 사태를 파악하고 무엇인가 일을 꾸미는 표정이라든가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며 애원하는 눈빛까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도희야>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문제들을 제법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가정 폭력,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인권, 동성애 그리고 무사 안일한 공권력의 실상까지. 그러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도희의 활약으로 마지막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비록 칸 영화제에 비경쟁 부분에 출품되었지만 ‘주목할 만한 시선의 영화’로 선정되었고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나름 성과를 거둔 셈이다. 아마 심사위원들이 영화의 색다른 결론에서 폭력에 항거하는 메시지를 읽어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재상에게 요구되었던 원칙은,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두려워하면 그에게서 폭력의 냄새를 맡아보라는 것이다. 이 원칙은 대단히 중요한데 약한 사람에겐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음을 알아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재상이었던 요셉은 하느님의 사람답게 자비를 베푼 인물로 유명하다.

마을을 떠나는 영남의 차 안에서 도희는 실로 오랜만에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비오는 날 차 창문을 뿌옇게 장식하는 그녀의 입김은 마치 오랜 방황 끝에 돌아와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긴 듯, 평온하게 내쉬는 안도의 입김이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이었다.

*
박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20일,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1,34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