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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교만의 치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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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23 ㅣ No.827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교만의 치유제

 

 

교만한 자는 자기의 교만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영성이나 심리 상담에서 상담자에게 매우 힘든 내담자이다. 왜냐하면 자기에 대해서만 말하려 할뿐 자신의 진정한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일상적이며 피상적인 문제만을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 자신의 교만에 대해 인식하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교만한가?’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답하기를 망설인다. 문제는 본인이 ‘자신의 교만을 어느 정도로 중대하게 여기는지.’이다.

 

실제로 교만하면서, 자신의 교만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거나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교만을 치유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자신의 교만에 어느 정도의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가 교만을 다루는 출발점이 된다.

 

▶ 교만의 영향 관찰하기

 

교만의 영향력을 인식하는 정도와 교만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자신의 교만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교만 때문에 치르는 대가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교만의 유익과 대가의 비교에서 오는 산술적 계산만으로 더 이상 교만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사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 얻는 유익보다 교만으로 말미암아 치르는 대가가 더욱 크다고 판단되면 교만을 치유하려는 동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 교만한 행동을 통해 얻으려는 것 찾기

 

외적으로 드러난 교만한 행동(무시, 비난, 잘난 척, 허세, 거짓말 등)으로 지지와 인정을 받으려 하거나,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려 한다면 더욱 긍정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지와 인정을 찾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은 적절해야 한다.

 

열등감 또한 우리에게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아들러(Adler)는 성공하는 사람의 가장 큰 원동력을 열등감이라고 강조하였다. 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자기 자신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기

 

교만은 자기 인식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실제 자기의 모습을 대면하지 못하고, 이를 거부하며 ‘이상 자아’(ideal self)를 ‘실제 자아’(real self)로 착각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임상 심리학자인 솔로몬 쉼멜 교수는 교만의 치유제로 ‘지속적 자기 관찰과 자기 비평’을 소개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객관적인 자기 인식’과 연결되며, 인간의 여러 측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으로, 자신의 기억이나 신념, 추측, 이상 등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이나 환경과 맺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경우에 이 과정은 즐겁고 유쾌하기보다 좌절되거나 우울하다. 하지만 이때의 좌절과 우울감은 성장을 위한 과정이기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신에 대한 인식을 돕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심리 상담이나 심리 검사.

 

지난날에는 심리 상담과 심리 검사 등은 심리적 문제가 있어 받는 것이라고 그 의미가 축소되어 이해되었지만, 이러한 상담과 검사는 자신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둘째, 새로운 활동과 흥미, 관계로 들어가기.

 

교만한 자들은 새로운 활동과 만남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지극히 단순한 일상의 만남이나 일조차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하면서 회피한다. 독서 또한 세상을 마주 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전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나 흥미 위주의 독서도 좋지만 때때로 다른 분야의 책도 가까이 하면서 자신의 지식이 협소함을 느끼는 시간도 필요하다.

 

셋째, ‘성찰’.

 

다음과 같은 질문은 성찰의 기본 형태가 된다.

 

“오늘 하루(사건, 만남, 시간)나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던 것 가운데 좀 더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자기 인식

 

그리스도인에게는 또 다른 측면의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객관적 자기 인식’을 넘어서는 ‘올바른 자기 인식’이다. ‘올바른 자기 인식’은 타인이나 환경과의 관계를 통한 자기 인식을 넘어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피조물로서의 자신,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자신, 유한한 능력을 지닌 자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자신 등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객관적 자기 인식’과 ‘올바른 자기 인식’은 서로를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병행되어야 한다.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자기 인식을 배제한 채 하느님 안에서의 자기만 바라보려는 시도는 자칫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객관적인 자기 인식에만 머물면 자신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자기 인식은 객관적인 자기 인식을 포함하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올바른 자기 인식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고해성사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부족함도 끌어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껍데기를 벗는 겸손

 

영국 성공회의 테일러(J. Taylor) 주교는 ‘겸손은 이교 철학으로 말미암아 전수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지닌 특별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넓은 의미에서 올바른 자기 인식은 ‘겸손’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교만의 가장 근본적인 치유제이기도 한 이 겸손은 ‘올바른 자기 인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극적이거나 무조건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껍데기(과장, 허풍, 거짓말)를 벗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거짓 겸손’과 ‘진정한 겸손’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거짓 겸손은 열등감으로 고통받지만 진정한 겸손은 그렇지 않다. 거짓 겸손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지만 진정한 겸손은 건강한 자존감에서 시작된다. 거짓 겸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소극적이지만 진정한 겸손은 용기를 동반한다.

 

이 둘의 차이는 대인 관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진정으로 겸손한 이는 남들의 비판을 마주할 수 있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다른 이의 부족함을 탓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또한 진정한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을 교만이라 하며 그 치료제로 사랑을 일컬었다. 자신의 입에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좋은 평가를 자주 담는 것은 교만이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음 호에서는 ‘분노’에 대해 살펴보자.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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