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7일 (목)
(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성경자료

[성경]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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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05 ㅣ No.3745

거룩한 독서

 

 

I.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1. 렉시오 디비나

 

유네스코가 1995년에 세계인의 독서 증진을 위해 ‘세계 책의 날’로 지정한 4월 23일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근처에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에서 제오르지오(George) 성인의 축일을 경축하며 책과 꽃을 선물하는 풍습이 행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 그곳에서는 ‘사랑을 위해 장미를, 영원을 위해 책을’이란 슬로건을 달아놓기도 하는데, 이는 책과 꽃이 지성과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랑을 지혜롭게 가꾸자는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독서는 학문과 인격을 갖추는데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도 책을 가까이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도 책을 읽는 것과 연관된 용어입니다. 라틴어 명사형 ‘렉시오(Lectio)’라는 단어는 ‘수집, 모음’ ‘독서’ ‘강독’ ‘선택’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렉시오 디비나’에 담고 있는 ‘Lectio’는 ‘독서’라는 의미에 집중합니다. 독서이지만 단순히 읽는다는 것 이상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 ‘신성한’ ‘신적인’ ‘하느님의’이라는 뜻의 형용사 ‘Divina’를 덧붙여서 ‘렉시오 디비나’라고 명명합니다. 이를 ‘신성한 독서’ 혹은 ‘거룩한 독서’라고 부릅니다. ‘독서’라면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을 읽는 것일까요?

 

2. ‘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독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저런 책을 읽고 살아갑니다. ‘책의 날’을 특별하게 지정할 만큼 독서를 장려해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수의 책을 읽고 지식과 교양을 높여갑니다. 그러나 렉시오 디비나는 학문적인 책이나 여타의 종교 서적, 신심 서적과 같은 일반적인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의 대상, 방법, 목적이 일반 서적을 읽는 것과 달리 오직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기 때문에 세속적인 독서나 학문적인 탐구를 위한 독서와는 전혀 다른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을 읽는 것이고, 성경을 읽되 지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기원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씀의 신비는 인간적인 노력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로부터 각자의 마음에 내려오는 은총을 통하여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고려한다면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읽고 내면화하는 인간적인 활동인 동시에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활동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이면서 또한 사무엘이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라고 고백하듯이 충실한 종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건네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7년 7월 2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교황주일) 수원주보 3면,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II. 렉시오 디비나 콘티누아(Lectio Divina Continua)

어느 작가가 운동과 다이어트에 대해 “잠깐 한번 노력해 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휴가 때 잠깐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렉시오 디비나를 떠올렸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도 일회적이 아니라 꾸준히 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복 한다.’는 의미의 ‘콘티누아(Continua)’라는 단어를 덧붙입니다. 따라서 렉시오 디비나 콘티누아는 ‘하느님과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깐 한 번 노력해 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한 번 크게 이는 폭풍우에 바위에 구멍이 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구멍이 패이는 것처럼, 지속적인 노력이 병행될 때 무엇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진리를 알고는 있지만 어떤 행동이 자기 몸에 붙기까지 반복적으로 꾸준히 지속하는 것만큼 힘든 게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굳게 다짐하였으나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너나 할 것 없이 보편화된 실패에 대해 서로 관대해지나 봅니다.

사실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10여년 정도 꾸준히 한다면 아마도 그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할 것입니다. 예로니모 성인도 ‘독서는 끈기를 낳고 끈기는 친숙해지게 하며, 친숙해지면 신앙이 자란다.’고 하였듯이, 우리가 성경의 세계와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고 자주 대하는 지속적인 인내가 필요합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꾸준히 읽는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의 영혼과 육신이 서서히 말씀으로 관통될 정도로 매일 적은 시간이라도 여건이 되는 만큼 꾸준히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것입니다. 어느 날 식사를 많이 했다고 며칠을 굶는 것이 아니라, 식사 시간과 양을 규칙적으로 지속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렉시오 디비나도 규칙적인 시간, 정해진 시간을 요구합니다. 급하고 부적절한 시간에는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그때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알맞은 시간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열망 때문에 마치 하느님의 몫으로 정해놓은 맏배를 바치듯이 고요와 침묵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시간을 자신의 시간표에서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 세상을 바꿀만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렉시오 디비나를 하다보면, 내가 말씀을 읽고 있는데 오히려 말씀이 나를 읽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2017년 7월 9일 연중 제14주일 수원주보 3면,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III. 렉시오 디비나 콘티누아(Lectio Divina Continua)


1. 은총을 맞이하기 위하여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낚시 준비하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낚시할 장소에 도착해서 낚시대를 펴고 낚시하는 행동들이 다 즐겁습니다.

낚시 도구를 잘 차려놓은 다음 물가에 앉아 찌만 바라보고 있어도 혹은, 의자에 누워 낚시대가 드리워진 물과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고민도 시름도 불만도 다 잊고 기다림 가운데 알듯 모를 듯 자신에게 스며드는 설명 못 할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획이 없으면 아쉬운 감이야 있겠지만 비록 허탕치고 돌아와도 물가에 가는 그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서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모습도 낚시꾼과 참으로 유사합니다. 오래전 우리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형성된 성경은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삶을 비추는 힘이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말씀을 갈망하지만 자기 자신을 만족하게 하려는 노력이 아니므로 낚시꾼이 어획 없이도 설렘으로 다시 낚시터를 찾듯이, 아무런 감동 없이 밋밋해도 지치지 않고 성경을 매일 읽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우리 각자를 읽으시고 보셨듯이 우리도 그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을 읽고 보는 눈을 지니는 은총을 맞이하기 위해서 성경이 펼쳐진 말씀의 낚시터에서 예의(銳意) 주시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2. 게으름의 유혹

지난주에 우리는 성경을 읽는데 ‘꾸준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지속해서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데 제일 큰 방해거리는 밖에 있기보다는 자신 안에 있는 게으름 즉, 태만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경건을 빙자한 게으름은 자신을 속이면서 안일한 삶을 부추기고 얼마나 자주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자는 사랑의 반대말을 미움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주장하고, 악을 게으름의 극한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를 지속해서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1등 공신인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다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입니다. 게으름과 더불어 방랑자처럼 방향 없이 사방으로 향하는 분심도 말씀의 샘에서 우리를 차단시키는 큰 장애물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마치 시집을 읽는 것처럼 천천히 읽으면서 깊은 맛을 보고 말씀 안에 잠긴다면 좋겠으나, 다양한 여건과 이유로 자주 밑도 끝도 없이 분심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성경을 덮기보다는 큰 소리를 내어 읽는다면 분심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눈으로 읽는 시각에다 소리를 덧붙이는 청각으로 주의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 읽는 동안 마음이 다른 데로 분산될 여지가 매우 적습니다. [2017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농민 주일) 수원주보 3면,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IV. 렉시오 디비나 콘티누아(Lectio Divina Continua)

 

3. 성경을 통째로 읽는다

성경을 읽다 보면 구약에 담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복잡다단하게 다가오기도하고, 성경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마치 독립된 단막극처럼 서로 무관하게 펼쳐지는 듯이 보이기도 하여 구약과 신약의 조합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별 본문들을 총체적인 계시의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신·구약은 모두 현재를 조명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래를 예고하기도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약은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역사를 정리하면서 그들이 체험한 수많은 신앙과 교훈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약의 말씀 안에는 신약이 예고되어 있고 신약의 말씀은 구약을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따로 떼어 분리하지 않고 ‘구원의 역사’라는 하나의 맥으로 관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째로 읽고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말씀과 친숙한 사람들은 하느님 말씀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성경을 읽다가 간혹 출몰하는 몰이해의 부분적인 걸림돌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달리 성경을 전체로 바라본 경험이 전혀 없다면 말씀에 대한 안목이 짧을 수밖에 없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잡기 어렵습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보다 주관주의와 같은 오류에 빠질 위험이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전체로 읽고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에서는 성경을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읽을 것을 강조합니다. 단숨이 아니라 서서히 성경과 친숙해지기 때문에 렉시오 디비나를 실행해 가는 과정을 외국어를 배우는 데 비유하여 말하기도 하고, 농부가 가을걷이를 위해 꾸준히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 후 바로 수확할 수 없고, 외국어가 입에 붙어 말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논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농부가 작물을 가꾸듯 시간을 내어놓지 않는다면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적 진보인 하느님과의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성경 말씀이 담고 있는 본래 의도를 잘 이해하고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능케 하는 렉시오 디비나를 하기위해, 가능하다면 새벽이나 일과 시작 전에 적어도 30분 정도를 할애하여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 나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겠습니다.

이러한 여건이 되지 못하다면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 가운데 가장 적합한 시간을 찾아 빠지지 않고 실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017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수원주보 3면, 황미숙 마리루갈다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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