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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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6 ㅣ No.251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3)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


12개의 크고 작은 도형으로 예수님과 성모의 영광 표현

 

 

- 북쪽에 ‘성모님의 영광’을 주제로 한 장미창.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모두 세 개의 장미창이 있다. 하나는 서쪽 파사드(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쪽에, 나머지 둘은 남쪽과 북쪽의 트랜셉트(transept, 익랑)에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살펴봤던 생드니수도원 성당에도 장미창이 놓여 있지만, 안타깝게도  프랑스 혁명 당시 훼손돼 19세기에 복원된 것이어서 원형은 알기 어렵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전성기였던 13세기에 제작된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은  모두 숫자 12를 내포하고 있다. 서쪽과 남쪽, 북쪽의 장미창에는 12개의 작고 큰  원들과 반원형, 사각형들이 반복해서 배치돼 있다. 중심의 큰 원을 따라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크고 작은 형태들을 일일이 세어보면 모두 열두 개씩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3개의 장미창 중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남쪽과 북쪽 트랜셉트의 장미창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북쪽에 놓인 장미창은 ‘성모님의 영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중앙의 큰 원에는 아기 예수와 함께 옥좌에 앉아계신 성모님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위를 성령의 비둘기 넷, 천사 넷, 왕 넷이 에워싸고 있다. 그 밖으로  마름모꼴의 프레임에는 성모 마리아의 조상인 유다의 열두 왕이, 마지막 가장자리를  마무리하고 있는 반원형 구획에는 열두 예언자가 묘사되었다. 마름모꼴과 반원형의  프레임 사이에는 사입원(원 네 개가 한데 모여 만들어진 무늬) 형태의 프레임에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꽃이 도식화된 형태로 표현돼 있어 이 창이 성모님께 바쳐진 창임을  알게 해준다.

 

오늘 작품에서 좀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 문양으로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클리어스토리 채광창이  그러하다. 이는 명동주교좌성당의 수호성인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성모님을 주제로 하는 창 맞은 편에는 역시 원형과 더불어 사입원이 12개씩  반복되며 구성된 장미창이 놓여 있다. 이 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정중앙에는 옥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주위를 에워싼 변형된 타원형  프레임에는 천사들과 네 복음사가의 상징이 표현되었다. 마태오 복음의 상징인 사람,  마르코 복음의 사자, 루카 복음의 황소, 요한 복음의 독수리를 좌우로 둘씩 볼 수  있다. 나머지 24개 구획에는 예수 그리스도 조상들이 표현되었다.

 

- 남쪽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주제로 한 장미창.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은 이렇게 하느님 계획을 상징하는 ‘12’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구획의 형태나 도상의 배치에서 조금씩 차이점을  보이며 표현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두 장미창 아래로는 각각 다섯 개로 이뤄진  꼭대기가 뾰족 아치로 된 높고 좁은 ‘란셋창’(lancet window)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표현한 장미창 아래에 놓인 란셋창에는 중앙에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좌우로 각각 한 쌍의 인물들이 무동을 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런 모습으로 표현되었을까?

 

지난 글 말미에 ‘거인  어깨 위에 난쟁이’이라고 소개했던 이 도상들은 구약과 신약이 서로 연관되며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표현된 인물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좌로부터  루카와 예레미야, 마태오와 이사야 그리고 우측에 요한과 에제키엘, 마르코와 다니엘이  각기 한 쌍씩 짝을 이루고 있다. 땅을 굳건히 받치고 있는 거인은 작은 난쟁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는데, 그의 두 발을 자신의 두 팔로 꽉 껴안고 있다. 그리고 위에  올라타 있는 난쟁이들은 거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다. 마치 이들은 서로의 깊은  뿌리와 영감의 원천이 돼주고 있는 듯하다. 두 몸이면서도 하나가 되어 우뚝 솟아있는  이 인물상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평화신문, 2016년 4월 24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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