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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13: 한국천주교회 빈민사목 뿌리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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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3-31 ㅣ No.125

[격동의 현대사 - 교회와 세상] (13) 한국천주교회 빈민사목 뿌리 '철거'


10여 년 동안 3개 공동체마을 이룩... 집단이주 '모범'

 

 

- 2004년 말 철거되기 직전 '복음자리 마을' 전경. 아래쪽 공터가 복음자리 마을 주민들이 명절이나 행사 때 집회를 갖던 공간이다.

 

 

1977년 초, 서울 양평 1ㆍ2동과 문래동 판자촌에 '철거' 바람이 불었다.

 

그해 3월 말까지 이사를 가지 않으면 강제로 판잣집을 철거하겠다는 공고가 나붙었고, 집집마다 이사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통보됐다. 주민들 얼굴엔 저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당시 제정구(바오로, 1944~1999) 전 의원과 예수회 정일우(John V. Daly) 신부는 양평동 판자촌에 '살았다'. '그냥 주민들 옆에 있는 것'을 원칙으로 양평동에 정착한 지 1년 3개월쯤 되던 때였다.

 

'주민들의 생각을 기다리며' 주민들과 함께해오던 제 전 의원과 정 신부는 철거가 임박하자 불안해하던 주민들과 함께 집단이주를 계획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 시흥군(현 시흥시)에 부지를 마련, 공동체를 형성한다.

 

훗날 가난한 사람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안으로 떠오른 '복음자리'의 시작이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도 복음자리 마을 형성에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국천주교회 빈민사도직의 실질적 씨앗이 됐다.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자성이 씨앗

 

제 전 의원과 정 신부는 왜 판자촌에 들어갔을까.

 

최근 (사)제정구기념사업회에서 펴낸 「예수회 신부 정일우 이야기」에서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66년 6월 사제품을 받은 뒤 미국에서 돌아온 정 신부는 예수회 부수련장과 수련장을 지내던 중 회의를 느꼈다.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자성이었다.

 

그래서 정 신부는 1973년 11월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갔다. 제 전 의원은 이미 정 신부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다. 교련 반대시위로 서울대에서 제적을 당한(훗날 복학해 졸업) 제 전 의원은 청계천 판자촌에서 '배달학당' 야학 교장을 하며 활빈교회 쪽방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쪽방에서 며칠간 제 전 의원과 함께한 정 신부는 판잣집을 구해 주민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신독재 정권이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다. 제 전 의원도 이때 끌려가 군사재판을 받고 1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1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거쳐 1975년 2월 출감했다.

 

석방되자마자 두 사람이 들어간 판자촌이 양평동이다. 제 전 의원이 1975년 10월에 들어갔고, 정 신부가 한달 뒤에 이사했다. 방 2개에 조그만 부엌이 달린 16.53㎡(5평) 짜리 판잣집이었다. 이 공간은 1년 6개월간 양평동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한 '사랑방'이 됐고, 이어 김 추기경이 방문해 축복함으로써 '예수회 복음자리'가 공식화됐다.

 

복음자리에선 날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어른들이 쉬고 놀고 싸우는 공간이 되기도 했고, 어르신들이 장기나 바둑 같은 여가를 즐기는 노인정도 됐고, 날마다 120여 명씩 아이들이 몰려드는 공부방이 됐다. 이로써 '양평동 공동체'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양평동 공동체는 판자촌이 강제철거되면서 시흥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로 그 맥이 이어진다.

 

- 1977년 4월 7일 철거를 앞둔 서울 양평동 판자촌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함께 둘러보는 김수환 추기경.

 

 

자활공동체의 터전이 된 '복음자리 마을'

 

양평동 판자촌 강제철거의 대안으로 집단이주가 추진되면서 제 전 의원과 정 신부는 난관에 부딪친다. '땅값'이 너무 올라 도저히 그 값을 치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정 신부는 김 추기경을 찾아가 따지듯 물었다.

 

"추기경님, 이 나라에 국민이란 존재가 있기나 하는 겁니까?"

 

김 추기경이 이 말에 놀라 "무슨 소리냐?"고 캐묻자, 정 신부는 "양평동 판자촌이 철거되는데 갈 데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민하던 김 추기경은 그 길로 독일 미제레올(Misereor)에 땅 살 돈을 지원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마침내 독일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당시 미화로 10만 달러에 이르는 거금이 들어온 것이다. 이 기금에 보상금을 합쳐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 33(현 시흥시 신천동)에 1만1900.83㎡(3600평) 규모 부지를 마련, 1977년 4월 10일 양평동 판자촌 둑에서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이주한다. 총 170가구였다. 1979년에 이주한 32가구를 합쳐 202가구가 여기에 삶의 뿌리를 내렸다.

 

집단이주는 결코 쉽지 않았다. 포도나무와 배나무가 심어진 땅에 천막을 치고 이삿짐을 풀었다.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는 악다구니 속에서도 집 짓는 일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무를 캐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집터를 닦고 벽돌을 찍었다. 평균 대여섯 번씩 천막살림을 옮기는 불편을 감수하며 6ㆍ9ㆍ15평형짜리 단층 연립주택을 지어나갔다. 공사는 8개월 만인 11월에 끝났다. 그리고 총회를 열어 마을 이름을 정했다. '복음자리 마을'의 탄생이었다.

 

운도 따랐다. 마을 주변에 공장이 생겨 주민들이 쉽게 취직을 할 수 있어서 2년 만에 땅값으로 빌린 융자금을 모두 갚았다. 지원해 준 독일 미제레올에서도 놀라워했다. 이처럼 융자금을 100% 상환한 사례는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뜻깊은 복음자리 마을은 2004년 12월 31일 주민 동의하에 철거되면서 현재는 고층아파트가 신축되고 있다.

 

- 김수환 추기경(가운데)이 1977년 4월 7일 강제철거를 앞둔 서울 양평동 판자촌 '예수회 복음자리'을 방문, 미사 전례를 주례하고 있다.

 

 

복음적 청빈으로 나아가는 빈민사도직

 

복음자리 마을은 또 다른 집단이주의 모델이 됐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복음자리 마을' 집단이주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자 두 번째, 세 번째 집단이주가 제 전 의원과 정 신부에 의해 시도됐다.

 

서울 당산동ㆍ신림동ㆍ시흥동ㆍ봉천동 철거 주민들은 1979년 복음자리 공동체의 성공에 힘입어 164가구나 집단이주에 참여했다. 이들은 당시 시흥군 소래면 은행리에 6611.57㎡(2000평) 부지를 사 2층 연립 6개 동으로 이뤄진 '한독마을'을 조성했다. 다만 한독마을은 건축법 개정으로 주민들이 직접 공사를 하지 못해 복음자리 마을처럼 '찐한 공동체'가 되지 못했다. 이 마을은 1990년 주민들이 스스로 재개발을 추진해 지금은 고층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목동 재개발은 목화마을('목동에서 보금자리를 철거당한 주민들이 화합을 이뤄산다'는 뜻) 건설로 이어졌다. 1983년 한독마을 인근에 복음자리ㆍ한독 마을 융자상환금과 독일 미제레올 지원금을 합쳐 6611.57㎡(2000평) 부지를 매입해 105가구가 입주했다. 46.28㎡(14평)형에 반 지층, 지상 2층 3개동이었다.

 

그리고 이들 마을 중간 지점엔 주민들의 지역 센터인 '작은자리 회관'이 세워졌다. 이 작은 기적은 주민들의 '희로애락' 속에서 주민들의 자조로 이뤄졌다. 독일 미제레올의 지원과 한국천주교회의 관심, 예수회의 격려도 지렛대가 됐다.

 

재개발과 전면 강제철거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뿌리채 뽑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빈민 사도직은 1985년 3월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 창립, 1987년 4월 서울대교구 교구장 자문기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설립으로 이어져 서울대교구에서 빈민사목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른다.

 

제 전 의원과 함께 빈민사도직을 실천해온 박재천(요한 세례자, 55) (사)제정구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돌이켜보면 3개 마을 집단이주에 함께한 그 10여 년은 가난한 사람들이 정부 지원도 없이 교회의 격려 속에서 자구적 노력을 통해 실질적 대안을 만들고 공동체를 이뤄나가며 이를 우리 사회에 대안으로 제시하려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평화신문, 2009년 3월 22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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