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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마카오 성 김대건 신부 발자취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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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89

마카오 성 김대건 신부 발자취를 따라서

 

 

- 김대건 성인 동상은 갓을 쓴 도포 차림에 왼쪽 가슴에 성경을 안고 축복을 하는 모습이다.

 

 

한국교회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안드레아, 1821~1846) 신부의 젊은 시절 땀과 고뇌가 밴 마카오를 찾는다. 한국교회와는 작지만 소중한 인연을 간직한 성지다. 이번 취재는 '베네시안 마카오'와 마카오항공 협찬으로 이뤄졌다.

 

먼저 마카오가 김대건 신부와 무슨 상관이 있는 곳인지부터 알아야겠다. 마카오는 김 신부가 정든 고향을 떠나 1837년부터 1842년까지 5년간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곳. 당시 박해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조선 땅에 신학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 전교를 맡고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운영하는 마카오신학교까지 유학을 떠나야만 했다. 중국을 거쳐 마카오까지 가는 데만 반년 이상이 걸린 고난의 여정이었다.

 

최양업과 최방제가 김대건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고, 최방제는 불행히도 마카오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최양업은 김 신부를 이어 한국교회 두번째 사제가 됐다. 조선 소년 김대건은 낯설고 물설은 이곳에서 뼈를 깎는 각오로 학업에 정진하며 조선교회를 이끌어갈 '하느님의 종'으로 거듭난다. 충청도 솔뫼가 김대건의 몸이 태어난 육체적 고향이라면 마카오는 소년 김대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부어준 정신적 요람인 셈이다. 도박 말고는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 마카오, 알고 보면 한국교회와 이처럼 큰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다.

 

세월의 무상함 탓일까. 마카오에서 김대건 성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마카오를 처음 찾는 신자라면 김대건 성인이 공부했던 신학교가 어디였는지 가장 궁금할 것 같다. 아쉽게도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김대건 성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극동대표부 터 인근에 있는 카모에스공원. 김대건 성인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1835년 화재로 성당 정면과 일부만 남은 성바오로성당은 마카오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김대건 성인도 이 성당에 자주 들러 기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카오의 중심지 루아 데 산토 안토니오 거리에 있는 카모에스공원은 16세기 후반 마카오에서 살았던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루이즈 카모에스를 기려 만든 공원이다. '흰 비둘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원 한 구석에 서 있는 김대건 성인 동상은 왼쪽 가슴에 성경을 안고 축복을 하는 모습으로 순례객을 반긴다. 갓을 쓴 도포 차림에 영대를 걸친 김 신부. 동상 좌우 편에서 고개를 길게 내민 야자수가 낯선 이국땅임을 실감케 한다.

 

김 신부의 유학생활은 말도 못하게 고달팠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라틴어로 진행되는 신학교 수업,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 김제준의 순교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당장 달려가고 싶었을런지 모른다. 카모에스 공원 구석구석에 머나먼 고향 조선을 향한 김 신부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배 있는 듯하다.

 

한국 주교회의가 이 동상을 제막한 것은 1985년 10월이다. 공원 한 구석에 있던 동상은 이후 양지바른 잔디밭으로 옮겨졌고, 1997년에는 홍콩과 마카오에 사는 신자들의 지원으로 보수를 거쳐 지금의 좌대 위에 세워졌다. 좌대 네 개 면에는 김 신부의 약력이 한글과 중국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영어로 쓰여져 있다.

 

- 김대건 성인 유해가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 안토니오 성당. 왼편 숲은 카모에스공원이다.

 

 

김 신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다른 한 곳은 카모에스공원 바로 앞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이다. 한인교포 신자가 봉헌한 김대건 신부 목상이 있는 곳. 그리고 이 성당 제대 아래에는 김대건 성인 유해가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안토니오 성당에 부임한 지 3년 됐다는 진보존(陳寶存) 주임 신부에게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김대건 성인의 유해인지 유품인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궁금하다고 남의 나라 성당 제대 밑을 파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을 찾는 한국 순례객들을 위해 안내문 정도는 꼭 있어야할 것 같았다.

 

성 안토니오 성당을 나와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몇백 미터 걸어 올라갔더니 성 바오로 성당이 나온다. 마카오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정면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성당. 마카오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명소 중의 명소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1602년부터 짓기 시작해 1637년에 완성한 이 성당은 설립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극동 아시아 지역에 세운 최초의 대학 건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1835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건물 정면과 계단, 좌우측 일부 벽면과 지하실만 남았다. 김 신부가 봤던 성당도 불에 타고 남은 지금의 성당 모습이었을 것이다.

 

- 성 안토니오 성당에 있는 김대건 성인 목상.

 

 

김대건 신학생도 마카오에 머무는 동안 이 성당에 자주 들러 간절히 기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신부는 당시 사제들만 통과할 수 있는 성당 정문의 돌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 이 문을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김대건 신부를 기억하는 이들은 '믿음으로는 안드레아 신학생을 따를 자가 없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지금은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만 붐비는 성 바오로 성당. 170여 년 전 이곳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기도하는 신학생 김대건을 마음으로 그려봤다. 김 신부가 이곳에서 조선교회를 생각하며 흘린 땀과 눈물과 피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능하기나 했을까. 지금은 비행기로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마카오. 마카오에 갈 기회가 있으면 김 신부의 넋이 깃든 성지들을 꼭 한번 둘러보자.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마카오

 

중국과 유럽, 특히 포르투갈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동방의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곳이다. 16세기부터 400여 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1999년 중국에 반환됐다.

 

지금은 중국의 행정특별자치구로 운영된다. 전체 면적은 29㎢로, 서울 여의도의 3.5배 크기다. 인구는 50여만 명이며, 대부분 중국인이다. 홍콩과는 배로 한 시간 거리다. 중국어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함께 사용한다.

 

가톨릭국가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한때는 가톨릭 교세가 번성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20여 개 성당이 있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은 10여 곳에 불과하며, 신자 수는 2만여 명 정도다.

 

[평화신문, 2008년 3월 9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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