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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 건축의 영성: 성전 건축은 신학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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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334

[교회 건축의 영성] 성전 건축은 신학에 대한 이야기

 

 

성당 외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솔크레이크시티 성당.

 

 

교회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또 교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을 때 비로소 이 시대에 부합된 교회가 탄생할 것입니다. 시설의 형태는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현대 교회 건축은 어떤 형태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물음입니다.

 

흔히들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교회가 과연 무엇일까요? 종교시설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는 것일까요? 종교시설의 고유한 가치와 열린 교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을 위해 종교시설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까? 그럼 유명 커피숍이나 거대 자본의 슈퍼마켓이나 외식 가맹점을 종교시설에 유치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흔히들 종교시설은 개방적이고 열려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개념 또한 모호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올바른 교회상

 

교회론적 차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숙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례학적 차원에서 교회의 기능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역사에서 전개되는 교회의 기능과 양상을 살펴보면서 현대의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도시 안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아내는지, 이 시대의 올바른 교회상이 어떤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성전 건축입니다.

 

신학자 이제민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회쇄신’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쇄신을 이야기하면서 위기에 처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주고자 하였다. … 당시 교회는 세상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으로 보았다. 그리고 세상의 어려움을 보는 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 교회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데서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 …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 실천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난 시대와 달리, 신이나 종교를 부정한다거나 거기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하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다. …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요되고 있다’(사목헌장, 7항).

 

교회는 자기로부터 등을 돌리는 많은 사람이 이중의 실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야 한다. 그들은 물질화되어 가는 사회에 실망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런 영적인 해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닮아가고 있는 교회의 운영방식, 영적이지 못한 제도에도 실망하고 있다. 그들은 물질주의로 물들어가는 메마른 현대사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이에 대해 아무런 영성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는 제도적인 교회로부터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그들은 생명의 하느님을 찾고 있는데 교회가 제시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은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데 교회가 들려준 것은 무엇인지, 혹시 제도의 틀 안에서 제도만을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쇄신은 제도적인 사고(의식)를 복음의 사고(의식)로 전환하고 복음을 통해 제도를 듣게 하는 것이다. 쇄신은 복음을 향하여, 복음을 목말라하는 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데서 시작한다.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교회가 세상을 향하도록 교회의 의식을 180도 전환시켜 놓은 것이다. … 사목은 남(세상)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을 향하여 자기를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이 의식으로 전환하는 일에 충실하지 못해서이다.”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종교시설이 도시 안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도시의 출발 자체가 성당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종교시설들은 ‘성역’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라는 이름으로 더 높은 담에 싸여있고 갇혀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현대의 상황에서도 종교는 더 높은 보이지 않는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만 군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요? 일주일에 몇 시간 안 되는 사용시간을 위하여 토지구입비, 건축비, 시설유지비 등을 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신에 대해 묻고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

 

도심 속의 쉼터. 의정부성당.

 

 

오늘날 우리는 교회 건축에 대해서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자들에게 “요즘 교회가 어떠세요?” 하고 물으면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교회가 본질적으로 공동체임을 생각하기보다 종교적 의무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찾는 시설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입니다. 종교의 거대한 시설 안에서 신을 우러르며 찬양을 드리는 장소인지 돌아볼 때입니다.

 

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제대로 따르는지 심각한 고민과 반성을 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신전으로만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신의 집이 아닙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 회당을 빌려 사용하거나 주거의 형태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집회를 위한 형태를 갖춘 교회 시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이 있는 곳에 인간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곳에 신이 있었습니다. 삶의 공간 안에 신도 함께 존재했습니다. 삶의 공간은 신의 거룩함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시설은 끊임없이 신에 대해 묻고 인간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종교시설은 인간의 삶의 깊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지역 공동체와 종교시설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적합합니까? 지역 공동체 안에서 종교시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종교시설은 지역에 대해 얼마나 열려있습니까? 본질적으로 공동체인 교회는 얼마나 많은 공공의 성격을 가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내 교회의 울타리는 없어져야 하고 교회의 본디 정신 안에서 교회는 공동체를 위해 내어놓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지역의 구성원으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떤 특정한 형태나 신을 담는 그릇이 아닙니다. 교회는 삶의 자리이자 참여의 장소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교회의 사명 자체를 완수할 때 진정 열려있는 것이며 신을 예배하는 기능에 충실한 것입니다.

 

현대 건축에서 도시의 밀도 안에 열린 공간이나 복합 공간에 관한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종교시설 또한 지역 공동체 안에서 단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종교적 공간은 그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도시 안에서 종교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설계 때부터 반영해야 합니다.

 

지역 공동체 안에서 종교시설이 변화한다면 도시가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도시 안에서 교회가 본디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종교시설이 삶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신의 권위를 드러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고, 인간이 믿는 하느님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교회를 통해 인간 삶이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프로그램이 점차 교회의 형태가 되고 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많은 이가 이용하고 힘을 얻고 사랑의 싹이 피는 공공의 공간을 연출해 내고 도시민에게 유익이 되는 프로그램은 하느님의 자리를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조화된 아버지의 집

 

성당 설계를 시작할 때 그냥 400석이니 500석이니 하고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교리실 몇 개 또는 사제관 몇 평 같은 그런 일차적인 것 말고, 그 지역에서 그 대지에서 과연 공동체는 무엇을 요구하는지 또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건축은 그에 대한 답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결과물이 그전의 성당들과 똑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고 시작하는 성당과 그렇지 않은 성당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날 것입니다.

 

전남 해남의 우수영성당 내부 공간.

 

 

그러한 물음 이후에 가장 적합한 배치를 고민하는 것이 수순입니다. 배치가 정확할수록 통풍이나 채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문제가 아닙니까? 배치와 동선을 연결시켜 생각하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의 사목적 배려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례적 문제입니다. 전례학적으로 우리 성당은 어떤 특성으로 꾸며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실용적인 문제도 따라오지요. 동선이나 교리실, 소강당, 사제관이나 수녀원에 대한 기능 문제들입니다. 성당을 먼저 배치하다 보니, 생활시설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빈 공간에 선을 그어 대충 배치하는 곳도 볼 수 있습니다. 성미술이나 성음악에 대한 문제도 놓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보통 잘 지었다는 성당들은 마감재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마감재는 바꾸기가 쉬운 요소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신학에 대한 이야기가 깊이 담겨있는 성당입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성당은 좋은 배치와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손으로 지은 성당은 기도하기 좋은 공간이며 전례적 의미가 돋보이고 사목적으로 어떤 배려가 있었는지 잘 보이십니까?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거룩함, 성스러움의 의미,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이 얼마나 더 신학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인지 되짚어봅니다.

 

* 이호 요셉 - 광주대교구 운남동본당 주임신부.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과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 계획과 설계를 공부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함평 하상성당, 군산 축동성당, 한성대성당 등의 설계에 함께하였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이호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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