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
(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정의배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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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37

성 정의배 마르코(1795-1866, 회장, 병인박해 때 군문효수)

 

 

서울 창동에서 태어난 성 정의배(丁義培) 마르코는 유업(儒業)에 종사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양 선교사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고 감동하여 곧 교리를 배우고 입교했다. 1845년 3대 조선교구장 고 페레올 주교가 입국한 후로는 서울 지역의 회장직을 맡아 순교할 때까지 20여 년을 헌신적으로 일했다. 또 1854년 성영회(聖영會)가 설립되었을 때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았다.

 

1866년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의 체포를 시작으로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서울지역의 회장으로 명망이 높은 정의배는 주교의 하인 이선이의 밀고로 2월 25일 체포되어 3월 11일 신 신부, 박 신부 그리고 그의 제자 우세영 알렉시오와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72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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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순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반면 자기 집에 앉아 안일하게 죽는 것은 진정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다닌 정의배는 서울 창동의 한 양반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유학(儒學)을 숭상하였기에 오로지 과거시험 공부에만 열심하였다. 그는 과거시험을 마친 후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다가 1839년 우연한 기회에 서양 선교사들의 순교 장면을 보게되었다. 그 때부터 '저들은 무엇을 믿기에 머나먼 낯선 땅에 와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진리를 전하면서 모욕과 멸시를 달게 받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하였고 그의 나이 마흔 여섯에 영세 입교하였다.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고 페레올 주교는 그를 전교회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순교하는 날까지 모든 열성과 시심을 다해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이 모습을 본 안 다블뤼 주교는 "산 성인(聖人)이로다" 하고 칭찬하였다. 정의배는 1845년 한국 최초의 고아원인 성영회(聖瓔會)가 설립되었을 때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았다.

 

1866년 장 베르뇌 주교의 체포를 시작으로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서울지역의 회장으로 명망이 높던 마르코는 주교의 하인인 이선이의 밀고로 2월 25일 체포되어 3월 1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바로 그날이 그의 72회 생일이었다. [경향잡지, 199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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