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
(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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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28

성 장 시므온 베르뇌(Berneux) 주교(1814-1866)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이다.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는 이 땅에서의 10년 간 사목활동 중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두 개의 인쇄소를 설치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며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1866년의 병인 대박해로 순교하여 주님의 품에 안겼다. 프랑스의 '르망' 교구 출신인 장 주교는 1837년 사제로 서품되어 동양 포교지의 하나인 월남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체포되어 2년간의 감옥생활을 치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다행히 석방되어 만주 요동 지방에서 10여 년 간 활동하였으며, 그곳에서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3월 서울에 도착하였다.

 

천사적인 신심과 깊은 신학 지식을 겸비한 드문 능력가였던 그는 엄한 극기 생활과 당뇨병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사목에 주력했으며 바쁜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신부 3, 4인이 맡아 볼 그런 넓은 지역을 직접 도맡아 보았다. 과연 한국교회는 그의 밑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았으며 교우들은 더 잘 교육되고 신자 수는 배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1866년 2월 뜻밖에도 모진 박해가 일어나 2월 23일에 체포되었다. 장 주교는 신문을 받을 때 자기가 이 땅에 온 것은 오로지 한국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따라서 강제로 끌려가기 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는 감옥에서 앞 무릎에 곤장 열 대를 맞았으나 얼굴에 고통의 빛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3월 7일 백, 서, 김 세 신부와 함께 새남터 형장으로 향하였다.

 

당시 군인으로서 장 주교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박 베드로는 그의 순교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형장에 이르자 주교와 세 신부의 옷을 벗겼다. 이어 사형 선고문의 낭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형벌을 받는 동안 즐거워 보였다. 마침내 망나니의 두 번째 칼날에 당년 52세인 장 주교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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