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
(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범 라우렌시오 앵베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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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95

성 범 라우렌시오 앵베르(Imbert) 주교(1796-1839)

 

 

한국명은 범세형(范世亨), 조선교구 제 2대 교구장. 주교로서는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같이 선교에 종사하던 나(모방), 정(샤스탕) 두 신부와 함께 1839년 기해박해 때 한강변 새남터에서 목을 잘려 순교하였다. 그는 조정에 의해 대박해가 일어나 더 이상 전교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은 물론 나중에는 두 동료 신부들에게까지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라는 말로 자헌을 권유하였다.

 

범 라우렌시오 주교는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인 소(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도 못한 채 병사하자 교황청에 의해 제2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7년 5월, 주교로 성성되었으며 그 해 말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그의 입국으로 조선교구는 그보다 앞서 입국한 나, 정 두 신부와 더불어 교구 설정 6년만에, 그리고 교회 창설 53년만에 비로소 전교 체제를 갖추었으며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복음전파에 힘쓴 결과 신자수는 1839년 초 9천 명을 넘게 되었다. 그는 또 한국인 성직자의 양성에도 뜻을 두어 정하상 등 네 명의 열심한 신자들을 뽑아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쳐 신부로 키우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박해로 말미암아 성공하지 는 못하였다.

 

범 주교는 1797년 4월 프랑스에서 태어나 1819년 12월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부가 되었으며 다음 해 3월 파리를 떠나 조선에 입국하기까지 중국 사천(四川) 교구에서 10여년 간 사목활동에 종사하였다. 1839년 대 박해가 일어났을 때 지방을 돌아보고 있던 범 주교는 조정에 의해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 사실이 알려져 포졸들의 추적이 심해지고 교우들에 대한 박해가 가열되자 하는 수 없이 수원에서 가까운 바닷가 어느 교우집에 몸을 숨기었다. 여기서 그는 나, 정 양 신부를 불러 두 사람에게는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념하고, 몸조심을 당부하며 두 사람을 각기 소임지로 돌려보냈다. 바로 이즈음 한 배교자의 책략으로 그의 거처가 알려지게 되자 그는 화가 여러 교우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나아가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으며 나 신부와 정 신부에게도 인편으로 자수할 것을 권유하여 다같이 1839년 9월 21일 군문효수형에 처해졌다 이때 그의 나이는 43세, 조선에 입국한 지 불과 2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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