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4일 (화)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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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파리! 다양한 색을 가진 도시! 그리고 진한 핏빛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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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08 ㅣ No.1920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파리! 다양한 색을 가진 도시! 그리고 진한 핏빛 커피”

 

 

시골에서 자랐던 내게 ‘파리’라는 단어는 우습게도 천장부터 길게 늘어져 있던 끈끈이를 떠올리게 한다. 깜빡이며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던 형광등 근처에 매달린 끈끈이는 왱왱거리며 한여름의 낮잠을 방해하던 파리가 몇 마리 붙어있었고, 가끔은 그런 파리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해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파리’라는 도시는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카페의 벽이든 관광 안내책자이든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파리’라는 단어는 전 세계인들에게 한껏 낭만적인 충동을 일게 한다. 비록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인 모파상은 쳐다보는 것조차 거부했고 객관적으로도 다양한 파리의 색채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철골구조의 에펠탑이지만, 이제는 그 탑이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그 아이러니도 파리의 색깔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파리는 작고 화려한 흰색 양산에 화려한 깃털을 달고 한껏 모양을 낸 높은 모자, 긴 드레스에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사뿐거리며 걷는 여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리창 너머까지 향기를 뿜어내는 예쁜 색을 가진 향수로 마무리한 그녀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파리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아름다우며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매력을 수백 권의 책으로라도 설명할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니케 여신의 조각상과 고대 이집트의 화려한 문화를 간직한 루브르 박물관, 12개의 방사형태 길을 가진 파리의 개선문, 센강의 물줄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유람선, 길거리 화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몽마르트 언덕,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소르본 대학, 그리고 전 세계 수천 개의 같은 이름을 가진 노트르담 성당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민중의 지지를 받았으나 결국 독재자로 생을 마무리한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생 루이 드 앵발리드, 그리고 유명하고 아름다운 회화작품들로 가득한 오르세 박물관까지, 파리의 색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파리야 말로 하루 이틀 만에 그 면모를 다 볼 수 없는 다양한 색채를 가진 도시이다. 물론 많은 한국 여행객들은 여전히 단 하루 만에 이 모든 장소를 해치우듯 방문하고 파리의 모든 색을 체험하려 들기도 한다. 그 짧은 일정에도 샹젤리제 거리의 쇼핑까지 끝내는 괴력의 신공을 가진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파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더욱 색다르다. 낭만만 가득해 보이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최첨단의 공업기술로 가장 뛰어난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유럽사회의 목소리를 주도하는 정치적인 힘, 시민의 힘으로 왕을 단두대에 처형했던 콩코드 광장의 역사도 파리의 또다른 면이다. 깊고 차가운 이성의 힘과 폭풍같이 강렬한 감성이 가장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민족적 뿌리가 뒤엉켜있고 가장 가깝고도 긴 국경을 맞닿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다양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독일은 왠지 흑백이 어울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주제넘은 확신이라 할지라도.

 

가톨릭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봤을 때는 파리는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프랑스라는 나라로 눈을 넓혀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프랑스는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 역할은 또다시 다양한 색채를 뿜어내는데,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많은 성인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며 가장 많은 성모의 발현이 목격되고 인정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교회가 가르쳐 왔던 사고가 사회 전반에서 폭 넓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파리 그리고 프랑스를 순례하면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종교적 사건과 거룩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소르본대학가에서 낭만에 취하더라도 그곳에서 배출한 알베르토, 토마스아퀴나스, 보나벤투라를 비롯한 너무도 위대한 성인 학자들의 깊고 진지한 호흡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걷던 퇴역 군인이 ‘부활의 롤랑’ 수사로 살아냈던 시간의 색깔을 목격하길 바란다. 그는 길거리에 구르는 낙엽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가르멜수도원에 들어가 묵묵히 청소와 샌들을 고치는 일을 하며 살았고, 오히려 그 하찮은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결국 ‘특별한 평범함’을 실현해 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된 클뤼니 수도원 개혁적 움직임에 마음이 움직이면 좋겠다. 철저한 침묵으로 하느님을 찾는 카르투시안들의 역설적인 역동감을 체감했으면 한다. 노트르담 성당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곳 그 광장에서 세상과 종교가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겪어야 했던 불필요하고 안타까운 성전기사단의 죽음도 기억해보자. 몽마르트 언덕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세상을 움직일 7인의 예수회 서약식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지금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화려하게 빛나는 루르드의 가장 큰 비밀이, 다름 아닌 베르나데트처럼 보잘것없는 이를 택해서 거룩함이 온 세상에 존재함을 드러내신 그분의 그지없는 사랑임을 알기를 원한다.

 

파리는 다양한 면모와 더욱 다양한 색채를 가진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특별한 색깔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가톨릭신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색이다. 그 색은 아주 짙은 진홍빛,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흐르는 ‘피’의 색깔이다.

 

파리를 여행하면서 쇼핑을 빼 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백화점은 많은 이들에게 파리만 가질 수 있는 좀 더 특별한 어떤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르 봉 마르셰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이다. 그곳은 겉으로 아주 특별해 보이지는 않지만 쇼윈도를 그냥 지나치는 강심장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르 봉 마르쉐를 오른쪽으로 끼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빈첸시오 성인과 가타리나 라부레 성녀의 성상을 바라볼 수 있는데, 그곳이 일명 파리의 기적메달 성당이다. 루르드의 발현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이곳에 성모님을 보내시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신원과 하느님의 자비를 알리셨다. 그러나 그곳이 붉은 피의 색을 가진 곳은 아니다. 기적메달성당을 뒤로하고 작은 책방을 지나 사거리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커피향을 맡는 그 순간 건너편에 “MISSIONS ETRANGERES DE PARIS”(파리외방전교회)라는 현판을 가진 건물을 볼 수 있다. 그 건물에 한발짝 다가서면 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몇 개의 걸개사진을 볼 수 있다.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 몇 장. 아시아를 대상으로 선교를 전하겠다는 이름 그대로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이다. 아시아에서 온 우리에겐 익숙한 사진들 사이로 정면건물은 지하 박물관과 2층 성당을 품고 있다. 그 건물과 우측 안내소와의 오솔길 사이로, 여전히 아시아로 파견되고 있는 신학생들의 못자리 ‘파리외방전교회의 신학교’가 있다.

 

2층 성당으로 오른다. 정면의 성모상과 함께 하느님과 침묵의 시간을 잠시 보내고 고개를 돌리면 놀랍게도 당시 조선으로 떠나는 네 신부님들의 파견예식이 그려진 그림을 한쪽 벽에서 볼 수 있는데, 그 그림은 근대 올림픽을 시작하는데 공헌했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부친의 그림인지라 어린 쿠베르탱 남작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어린이가 아니다. 브르트니에르 신부, 볼리외 신부, 위앵 신부 그리고 도리 신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을 가진 이 신부님들이 이 그림의 주인공들이며, 그들이 조선으로 떠나기 전에 있었던 파견예식을 그리고 있다. 이들 모두 누런 조선 땅의 색을 진홍빛으로 바꾸게 되는데, 그들이 이곳 낯선 땅에 숨어 들어와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다.

 

지하 박물관에서는 더욱 진한 핏빛 색채를 보고 맛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의 유물들과 반가운 한글 이름들을 본다. 조선 뿐 아니라 캄보디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의 유적과 그림들이 있지만,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커다란 석조탁자에 새겨진 한글 이름들을 마주하면 그 이름들이 마치 이 박물관의 주인처럼 느껴진다. 비록 서로 이름과 생김새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색의 피를 가졌음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네 신부님들을 포함한 10명의 프랑스 선교사들과 93명의 조선인들의 피는 150여 년 전에 조선의 땅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103위 성인들의 목록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파리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신학교의 건물 안쪽으로 너른 마당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조선(지금은 한국교회라고 불리는)교회에서 그 피의 색깔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보낸 석비와 종을 볼 수도 있다. 그 마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신부님들이 파견예식을 마치고 정들었던 학교와 고향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묵주를 들고 기도하고 천국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며 후배 신학생들과 생애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곳이다. 그래서 그 마당은, 그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으려는 듯, 1년에 한번 그들의 세상 마지막을 떠올리며 빨간 장미를 피워낸다. 파리를 방문하는 한국의 순례자들 모두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깊은 신앙과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빨간 장미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

 

파리의 색, 아니 프랑스의 색은 마치 그들의 국기처럼 희고 파랗고 붉다. 파리외방전교회를 나서면 프랑스 국기에 칠해진 우정과 박애를 뜻하는 붉은 색이 왠지 나머지 색깔보다 좀 더 짙어보이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파리외방전교회를 뒤로하고 다시 커피향을 내뿜는 사거리를 지나면서, 조선 땅에서 순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 놀랍게도 커피 한잔이라고 말했다는 순교 성인 신부님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는 그 향기에 마냥 취하지는 못한다.

 

핏빛 커피향을 코로 냄새 맡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곳! 그 작은 사거리는 파리가 가진 여러 가지 색깔 중에 으뜸가는 색을 볼 수 있고, 또 최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평신도, 2020년 여름(계간 68호), 김원창 미카엘(평화방송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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