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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조 바르바라와 장사광 · 손 막달레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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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14 ㅣ No.1836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12) 조바르바라와 장사광ㆍ손막달레나 부부

 

 

조바르바라(1783~1839)

 

조바르바라는 기해박해 순교자로 성인품에 오른 이영덕(막달레나)과 이인덕(마리아) 두 성녀의 어머니이다. 

 

그는 친정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했다. 그러나 비신자인 남편이 천주교를 반대했으므로 친정어머니와 두 딸과 함께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다. 

 

큰딸 이영덕이 혼인할 나이가 되자 조바르바라의 남편은 딸을 비신자와 혼인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동정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큰딸 이영덕은 손가락을 베어 혼인하지 않겠다는 혈서를 쓰기도 했다. 

 

조바르바라는 남편의 강요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 어느 날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교우 집에 의탁했다. 앵베르 주교는 조바르바라에게 두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도록 회유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임을 알고는 회장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게 했다. 이에 조바르바라 모녀는 서강 독갑이골에 마련된 새 거처에서 생활했다.

 

이들은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1839년 5월 체포돼 포도청으로 압송됐다. 문초와 주뢰형에도 신앙을 증언하던 조바르바라는 형벌 때문에 쇠약해진 몸에 장티푸스까지 걸려 그해 8월 옥에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였다.

 

 

장사광(베드로, 1787~1839)ㆍ손막달레나(1784~1839) 부부

 

장사광은 서울 중인 출신으로 양근 한감개에 살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28년까지 교회를 멀리했다. 장사광을 회두시킨 사람은 그의 아내 손막달레나였다. 손막달레나는 1802년 순교한 복자 손경윤(제르바시오) 회장의 딸이었다. 회두를 결심한 장사광은 비신자였던 부모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위패를 불살랐으며, 향교 명단에서 스스로 자기 이름을 삭제했다. 그리고 술을 완전히 끊고 절제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장사광은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1839년 8월 체포됐다. 양근 군수는 장사광과 손막달레나에게 배교하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혹독한 형벌을 가했지만, 그들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장사광은 양근 군수에게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떻게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천주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천만 번 못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증언했다. 이 때문에 장사광 부부는 10번 이상 문초와 형벌을 당했다. 그러는 동안 두 아들은 배교해 석방됐다. 

 

장사광 부부는 관장의 지시로 음식을 일절 받지 못해 극한의 굶주림에 시달리다 장사광은 그해 12월 18일, 손막달레나는 나흘 뒤인 22일에 순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1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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