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수)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순례와 예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9-16 ㅣ No.670

[믿음과 은총] 순례와 예술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순교성지와 천주교 사적지로, 순교 성지는 ‘피를 흘렸던 순교지’, ‘성인과 순교자의 묘소’라고 할 수 있고, 천주교 사적지는 ‘천주교의 발상지’, ‘성인의 탄생지’, ‘유서 깊은 본당과 교우촌’, ‘기타’(박해를 받았거나 생활하였던 터와 유택지, 동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에 대한 공경은 1791년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순교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이미 신자들의 자발적인 순교자 묘지순례, 즉 성지순례가 실행됐다. 이후 오랜 박해기간 동안 신자들은 순교자 현양운동을 자발적으로 벌이기 시작했으며, 1925년 한국 천주교의 공식 순교자 현양운동이 본당별로 전개되었다. 1946년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발족되었으며, 1960년대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남터, 절두산 성지 등을 조성했으며, 각 지역의 교구별로도 성지 개발을 통한 현양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순례는 ‘하느님에게 특별한 은혜를 얻고자, 또는 회개, 감사, 신심의 행위로 거룩한 장소나 성지를 여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함축하고 있는 신앙의 행위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성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앙인들은 영적인 변화를 갈망하면서 순례지를 찾는다. 그곳에서는 순교를 자처했던 모범적인 신앙의 선조들의 영성을 확인하고 순례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순례지에서의 미사를 통해서 공동체적인 일체감을 확인하고, 더욱이 자기 정화를 통해서 영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순례의 행위에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 그리스도교 미술이다. 파올라 리카(Paola Ricca)는 “아름다움과 모든 예술적 표현은 하느님의 은총, 곧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신비로운 선물이며, 세상의 면모를 바꾸어 어느 모로든지 세상을 재창조하는 예술은 신학의 누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종교와 예술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122항에서는 ‘예술은 그 본질상 인간 정신을 경건하게 하느님께 돌리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면서, 더욱더 하느님 찬미와 영광을 드높이게 된다.’고 하며 복음화의 중심인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에서 문화 예술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술은 복음을 선포하는 특별한 도구로써 천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성지 내 박물관이나 역사관, 다양한 예술 형태로 제작된 상징적인 형상을 접할 수 있다. 순례자들은 교회 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신앙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소중한 역사를 남겨준 신앙 선조들의 거룩함이 담긴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과 문화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순례자들은 ‘보는 행위’로, 즉 신앙의 눈으로 시각적 신심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성유물을) 바라보는 자는 그의 모든 감각, 눈, 입, 그리고 귀로 마치 진짜 성인의 몸을 끌어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서 성인의 신앙과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고, 그 순교자가 마치 여기에 온전하게 있는 것처럼 그에게 간구한다.”는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말이 있다. 모든 이미지가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나게 하고 지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처럼, 순례자들은 성지 내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나 성지 내 곳곳에 배치된 조형물, 도상적 이미지 등과 같은 다채로운 물질적 형태를 바라봄으로써 성스러움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지에서 순례자들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과 연결된 성스러움을 바라보며, 내적으로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인천주보 4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10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