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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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8: 로마네스크와 석조 볼트 천장, 롬바르디아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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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8 ㅣ No.662

[성당 이야기] (8) 로마네스크와 석조 볼트 천장, 롬바르디아 건축

 

 

지난 회에 웨스크워크와 이스트엔드의 분화 및 네이브의 확장으로 로마네스크 시대가 한층 가까워졌음을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로마네스크 성당이 지향하는 수평과 수직의 분화와 확장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당의 기둥 및 벽체와 유기적 연관성을 갖는 천장의 처리였습니다. 로마제국의 건축과 비잔틴 건축은 ‘석조 곡면 천장’을 선호한 반면 그리스도교 건축과 서유럽의 건축은 ‘목조 평면 천장’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건축적 전통이 초기 로마네스크를 형성하는 단계에까지 이어져서 각각 유럽 남부 로마네스크와 북부 로마네스크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 유기성으로 볼 때 기둥과 천장이 이질적 재료일 경우보다는 동일한 재료일 경우에 더 높은 완성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로마네스크 건축은 목조 평면 천장이 석조 곡면 천장으로 바뀌어 가는 쪽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단절된 로마와 공간적으로 단절된 비잔틴의 석조 기술이 어떻게 로마네스크 시대에까지 전달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롬바르디아 건축’입니다. 롬바르디아 왕국은 게르만족인 랑고바르드족이 6세기 알프스 이남의 북이탈리아를 점령하여 세운 나라로, 그 세력이 점점 강해져서 로마까지 위협하였습니다. 이에 로마 교황은 카롤링거 왕조에 도움을 요청했고, 피핀에 이은 카롤루스 대제의 공격으로 롬바르디아 왕국은 8세기에 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롬바르디아 건축은 롬바르디아 왕국의 건축을 말하는데, 이후 왕국은 사라졌지만 건축적으로 높은 수준의 롬바르디아의 장인들은 석조 볼트(vault, 반원통형의 곡면구조체) 천장과 롬바르디아 밴드(band, 띠) 등에서 독창성을 드러내며 서유럽에 그들만의 조적술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렇게 롬바르디아 건축은 로마제국 이후 중세에 이르는 건축적 공백을 메우며, 로마와 비잔틴의 석조 볼트 천장의 시공술을 보존하고 있었고, 이것이 초기 로마네스크의 중요한 건축적 요소가 된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카롤루스 대제의 롬바르디아 점령이 건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롬바르디아의 건축술이 프랑크 왕국의 전역에 전파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유럽이 빠르게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로마의 교황들은 각 지역에 많은 대성당과 수도원을 건축하였는데, 이때 파견된 건축기술자들 역시 롬바르디아의 석공 장인 집단이었습니다. 지역의 주교좌 성당이 교황이 보낸 장인 집단에 의해서 축조되었다는 것은, 교회의 시각에서 보면, 교황권이 지역 주교의 권한보다 우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아직 석조 볼트 천장이 나타나지 않는 독일 북부의 초기 로마네스크 성당들을 보면, 이 지역은 롬바르디아 건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결국 교황권과도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세의 성당 건축은 교회와 국가의 영향 아래 조금씩 성장하여 나아갔습니다.

 

[2019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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