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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화로 만난 하느님15: 채찍을 들고 슬퍼하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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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1 ㅣ No.655

[성화로 만난 하느님] (15) ‘채찍을 들고 슬퍼하는 예수 그리스도’


채찍 휘두르는 슬픈 예수, 우왕좌왕 놀라는 상인들 대조

 

 

예수께서 몹시 화가 나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예수는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이 오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격렬하게 분노한다. 네 복음서 모두 성전에 들어간 예수가 더럽혀진 성전을 보고 환전상과 상인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성전 밖에서 이뤄져야 할 일들이 성전 안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고, 조용히 기도하고 예배하는 성전이 북새통을 이루는 장사하는 집으로 바뀌고 말았다.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는 내용을 다룬 그림은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자주 그려지지 않았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역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이고 장중하며 열정적인 회화적 특징이 있어, 이 그림에서 보이는 상인들의 엎어진 좌판이나 쓰러진 사람들, 분노하는 예수의 동작들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야코프 요르단스의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는 예수’, 1645~1650년, 캔버스에 유채, 288x436㎝,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분노한 예수

 

플랑드르 바로크 시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야코프 요르단스(Jac ob Jordaens, 1593~1678)는 바로크 회화의 역동성과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 표현을 작품에서 잘 보여 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영향을 받아 생기발랄한 양식으로 그린 근육질의 인물과 역동적인 구성을 찾을 수 있다. 또 카라바조에게 영감을 받은 강한 명암대비와 평범한 인물에 대한 애정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림 앞쪽은 온통 장사치들의 상거래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예수와 20명의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독립성은 뚜렷하지 않다. 대신 각각의 요소가 얼기설기 얽혀 덩어리처럼 보여, 하나의 전체적 효과가 강조된다.

 

그러나 화면 전체적인 배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들과 동물들은 5줄의 수평선을 기반으로 배치했다. 동시에 배경의 웅장하고 장엄한 고전 건축은 수직선을 기반으로 명료하게 나타냈다. 특히 화가는 그림에서 바로크 회화의 파격적 구도라고 할 수 있는 대각선 구도 안의 역동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대각선 구도는 왼쪽 아래 모서리부터 오른쪽 위 하늘이 보이는 대각선 문까지로, 문 밖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때문에 공간의 깊이가 더욱 확장돼 보인다.

 

오른쪽에 붉은 망토를 두른 예수는 양이나 소를 끌고 온 끈을 집어 단단한 채찍을 만들어 사정없이 상인들과 짐승들을 쫓아내고 있다. 오른팔에 채찍을 들고 힘 있게 분노를 표출하는 예수의 강한 카리스마는 화면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더욱이 예수의 몸통은 약간 뒤틀려 대각선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형태에서는 강한 역동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예수의 몸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얼굴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고 시선은 멀리 바라본 채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두렵고 놀란 사람들

 

반면 예수 주변은 채찍을 피하는 상인들의 행동, 나뒹구는 의자를 잡으려는 사람, 우왕좌왕하며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 등으로 떠들썩하다. 이 광경을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잡혀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과 사람, 크고 작은 짐승과 사람들이 엉켜 큰 혼잡을 이룬다. 이런 혼잡 속에 집중되는 사람은 중앙에 상의를 벗은 장사꾼과 그 옆에 부인으로 보이는 아이를 안은 여자다.

 

오른쪽 커다란 문과 예수 자체에서 발산하는 빛은 중앙의 인물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화면 전체에 광선이 균등하게 분포하던 고전 회화와는 달리, 바로크 회화에서는 광선이 중심 사건이나 또는 몇 개의 지점으로 집중된다. 

 

빛으로 집중된 사람의 얼굴은 심술궂게 찡그린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손에는 나귀와 닭을 움켜쥐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뽀얗고 살집 있는 여자는 차려입은 옷과 모자로 보아 가난한 길거리 노점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왼쪽에 흰 수건을 쓴 노인은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경을 끼고 예수를 바라본다. 마치 이들은 꽤 부유한 장사꾼으로 유월절 대목을 노리고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반면 왼쪽에 나귀를 잡고 있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은 이득을 취하려는 장사꾼들과 대조적이다. 위쪽에 예복을 입은 사람들은 제사장이다. 이들은 예수의 분노에 대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수라장이 된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색의 반투명한 두 마리 새의 불길한 징조처럼 예수를 불길한 일을 초래하는 사람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얼굴이다.

 

예수의 슬픈 마음과 분노의 동작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화면 맨 앞 중앙에 넘어지는 인물이다. 예수께서는 성경 구절(요한 2,15)처럼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예수의 오른쪽 발은 탁자 다리에 놓여 있고 탁자 위에 있던 돈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의자에서 뒤로 나뒹굴어지는 남자의 표정은 마치 캔버스에서 튀어나올 듯 생생하고 살아 있다. 또 그와 탁자에 마주 앉았던 사람은 반대쪽으로 넘어지고 있어 화면 구성의 박진감을 더한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오른쪽 문 가까이에 있는 과일바구니를 머리에 인 여자는 주변의 소란스럽고 혼란한 분위기와는 달리 우아하고 평온한 표정이다. 마찬가지로 화면 오른쪽과 왼쪽 아래의 머리만 보이는 소와 나귀도 그저 평온하다. 소와 나귀는 예수의 탄생 장면을 연상케 하는 요소다.

 

- ‘예수 탄생’, 4세기, 스틸리콘의 석관(일부), 이탈리아 밀라노 성 암브로시오성당.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성당에 있는 석관 윗부분에는 가장 오래된 예수 탄생 도상이 새겨져 있다. 구유에 누운 아기의 양 옆에는 소와 나귀만 등장한다. 교부들은 소와 나귀에 대해 소는 유다인을 상징하고 나귀는 이교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으며, 소와 나귀 사이에 자리한 예수는 양쪽 모두의 구세주로 온 것이라고 설파했다.

 

예수는 세상의 구원자로 누추한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강력한 힘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마치 두 번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소박한 구유에서 연약하게 태어난 예수는 엄격한 재판관처럼 그의 복음적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다만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집에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온 것이지 벌하러 온 것은 아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7월 21일,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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