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2: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8 ㅣ No.375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


‘참 얼굴 담은 천’, 베로니카의 수건

 

 

-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의 베로니카의 수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비교한 도판. 베로니카의 수건의 초상을 기초로 예수님의 형상이 그려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라고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요한복음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Verbum caro factum est. 「성경」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로 옮김)고 합니다. 니케아 신경은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incarnatus est et homo factus est)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신 이 역사적 사건을 교회는 ‘강생의 신비’ 또는 ‘육화의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이 강생과 육화의 신비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게 되었고 만지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과 형상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묵상할 수 있게 되었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인간을 성화의 길로 이끄십니다.

 

사도시대부터 이어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초상(Icon)이 예수님의 지상 삶 동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이것을 ‘참된(Vera) 형상(Icon)’ 또는 ‘거룩한 얼굴’이라며 ‘베로니카(Veronica)’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 동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형상’이라 하여 ‘아케이로포이에토스(αχειροποιητοξ)’라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걸으실 때 한 여인이 나서 그분의 얼굴을 천으로 닦아드렸는데 그 천에 주님의 얼굴 형상이 담겼다고 합니다. 이 전승은 오늘날까지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에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 과학자들은 예수님과 동시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 얼굴을 담은 천’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 이야기는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재위 527~565) 때 널리 전승되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예수님 생존 당시 에데사의 왕이었던 아브가르가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 포르피로게네투스 황제가 944년 에데사에게서 이를 사들여 콘스탄티노플 파로스의 동정녀 성당에 모셨다고 합니다. 이후 동방 교회는 8월 16일을 ‘거룩한 얼굴의 콘스탄티노플 이전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십자군이 이를 약탈해 프랑스로 가져갔다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했습니다.(동방 교회 전승에는 프랑스 라옹 대성당 제의실에 보존돼 있다고 합니다) 이후 1660년부터 이탈리아 마노펠로에 있는 카푸친 수도원에서 베로니카의 수건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재임 당시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의 베로니카의 수건은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1세기 때의 천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람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고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 형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합니다. 다만 다른 것은 베로니카의 수건에는 눈을 뜨고 계신 예수님의 형상이, 토리노 수의에는 눈을 감고 있는 예수님의 형상이 담겨 있습니다. 수도원 중앙 제대에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의 예수님 얼굴은 왼뺨이 오른뺨보다 부어 있습니다. 또 오른쪽 눈두덩에도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습니다. 이마 위쪽 가운데와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핏자국이 있습니다. 폭행으로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예수님의 눈은 모두를 빨아들일 만큼 깊고 맑습니다. 진위를 떠나 이 베로니카의 수건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로 우리 믿음을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귀중한 초상임이 틀림없습니다.

 

성녀 베로니카의 대가, 성녀 베로니카와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 수건, 1420, 목판 템페라, 알테 파나코텍, 뮌헨.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언제나 성미술에서 첫 자리였습니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는 “성화상을 공경하는 이는 그 안에 새겨진 분의 인격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성화상에 대한 공경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예수님의 형상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성미술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로니카의 수건을 주제로 한 성미술로는 바티칸 성 마틸다 경당에 보관 중인 6세기 작품이 있습니다. 12세기 때 러시아 노브고로드화파가 그린 이콘도 유명합니다. 이들 동방 교회 이콘의 특징은 예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그려놓은 점입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14세기 이후부터 베로니카의 수건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십자군이 가져온 베로니카의 수건 이야기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예수님의 형상만 묘사한 이콘과 달리 서방 교회에서는 베로니카 성녀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은 수건이 나온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은 점차 유럽인의 얼굴로 바뀌어 갑니다. 

 

독일 쾰른에서 활동하던 성녀 베로니카의 대가(大家)가 1410년께 그린 베로니카의 수건은 낭만주의 양식을 띤 독일 중세 고딕 회화의 대표 작품으로 꼽힙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 고전 회화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로베르 캉팽도 목판 유화 작품으로 베로니카의 수건을 남겼습니다. 그는 베로니카 성녀를 보석이 박힌 붉은 옷을 입은 화려한 중년 귀부인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얇은 수건, 정원, 보석과 옷의 주름까지 극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엘 그레코도 1580년에 베로니카의 수건을 그렸습니다. 베로니카 성녀는 무심한 듯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검은색 배경과 흰색의 수건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은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는 붓으로 그려졌습니다. 바로크 시대 화가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랑 역시 1635년께 베로니카의 수건을 작품화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고개를 돌리는 듯하게 그려놓았습니다. 보는 이들의 감정을 상승시키기 위한 바로크 화풍의 특징입니다. 이 밖에 한스 맴링, 알브레히트 뒤러, 도미니코 페티, 마티스 등도 베로니카의 수건 작품을 남겼습니다.

 

성녀 베로니카, 1410, 목판 유화, 슈태델미술관, 프랑크푸르트.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18일, 리길재 기자]



2,63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