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5일 (월)
(백)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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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9 ㅣ No.661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수도회 (상)


최초의 여성 활동 수도회

 

 

- 예수수도회를 창립한 메리 워드. 예수수도회 제공.

 

 

메리 워드(Mary Ward, 1585~1645)는 최초의 여성 활동 수도회 예수수도회를 창립함으로써 교회 안에 여성들의 사도적 수도 생활을 개척한 인물이다. 영국 요크셔에서 신교(성공회)를 거부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교회의 사도적 활동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16세기 영국은 엘리사벳 1세 여왕의 ‘가톨릭 금지법’에 따라 많은 이들이 신앙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투옥되거나 순교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메리 워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 스페인령 플랑드르의 작은 도시 생토메의 클라라 봉쇄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느님이 수도원 안에서 고요히 기도하고 은거하는 삶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1609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앙의 억압과 박해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며 같은 지향을 지닌 젊은 여성들 마음에 불을 붙였다. 특히 그해 늦가을 ‘영광의 현시’로 알려진 영적 체험을 통해 그들 삶에서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게 될 사명에 대해 더욱 굳은 소신을 지니게 됐다.

 

이 소명에 따라 그의 첫 동료들과 플랑드르 생토메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룬 메리는 당시 가장 소외된 계층이었던 여성들, 무엇보다 신앙의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이주한 영국 가톨릭 가정의 소녀들과 교육 기회가 전무했던 지역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1611년 병상에서 회복 중이던 메리는 ‘예수회와 같은 것을 택하라’는 말씀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예수회를 창설한 이냐시오의 생활양식에 따라 교회에 봉사하려면 트리엔트공의회가 여성 수도자에게 규정한 ‘봉쇄’로부터의 자유가 전제돼야 했다. 보수적인 성직자들 사이에서 거센 비난이 일었고 수도회 인준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방 제후들과 지역 주교들 요청에 응답해 벨기에 리에주, 독일의 쾰른과 뮌헨,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 등 여러 곳에 학교와 분원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에 나섰다.

 

1631년 여성들의 사도적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 의해 수도회는 해체되고, 이단자로 고발돼 종교재판에 소환됐다. 종교재판소는 메리와 동료들에게 이단 혐의가 없다고 공표했지만 메리는 종교재판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로마에서 살아야 했다.

 

1637년 중병을 앓게 된 메리는 치료를 위해 세 명의 동료들과 로마를 떠났고 이 여정은 런던과 영국 북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병세는 깊어져 메리는 1645년 1월 30일 고향 요크셔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임종을 지킨 동료들에게 “여러분의 성소에 항구하고, 성소의 본질을 참되게 살며, 성소를 사랑하십시오”라고 유언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말은 ‘예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메리 워드를 “영국 가톨릭이 교회에 선물한 견줄 데 없는 여성”이라고 칭송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11월 29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수도회 (중)


하느님의 더 큰 영광 위한 ‘영국 여성들’

 

 

- 수도회 초기 동료들 모습. 예수 수도회 초창기 공동체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목적으로, 성 이냐시오의 사도적 활동 영성을 통해 신앙 옹호와 전파 및 영혼 구원을 위한 봉사를 이어갔다. 예수수도회 제공.

 

 

메리 워드는 평신도 신분으로 영국 요크 부근 휴워스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발자취는 결코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남겨진 영적 유산은 첫 번째 동료들의 성실함과 초기 회원들을 통해 계속 전수되고 보전됐다.

 

1622년과 1627년, 이탈리아 로마와 독일 뮌헨에 각각 설립돼 남아있던 그룹의 여성들은 메리 워드가 생전에 헌신했던 소녀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계속하며 독일 뮌헨과 아우구스부르크(1662년 설립)에서 공동체로 존속했다.

 

수도회는 1680년 아우구스부르크 주교 산하 수도회로 승인받은 것을 계기로 뮌헨-프라이징,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영국 요크에서 주교들의 승인과 지지를 받았다.

 

‘영국 여성들’ 애칭으로 더 많이 불렸던 수도 공동체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목적으로, 성 이냐시오의 사도적 활동 영성을 통해 신앙 옹호와 전파 및 영혼 구원을 위한 봉사를 이어갔다.

 

‘영국 여성들’ 수도회는 1877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동정 성모회’(Institut Beatae Mariae Virginie, IBMV) 이름으로 인준을 받고 교황청 산하 수도회가 됐다. 또 1909년 메리 워드는 수도회 창립자로 인정됐으며, 2009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천성적으로 쾌활한 성품 덕분에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과 평화를 잃지 않았던 메리 워드. 그는 생활 속에서 거룩함을 실현하는 새로운 양식을 추구했지만, 그 일을 반드시 자신이 이뤄내야 한다는 이기적인 야심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늘 “어떤 일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자기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만이 소중했다.

 

동정 성모회는 2004년 1월 1일부터 ‘예수 수도회’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쓰고 있다. 메리 워드는 애초 수도회 계획서에서 ‘예수’의 이름을 수도회 이름으로 명시했으나, 지난한 수도회 인준의 역사 속에서 실현이 어려웠다.

 

이런 창립자의 소망은 2002년 수도회 총회에서 채택한 고유법과 함께 ‘예수 수도회’(Congregatio Jesu) 명을 200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인준하면서 실현됐다.

 

한편 예수 수도회는 자매 수도회를 두고 있다. 바로 1686년 영국 요크 ‘바 콘벤트’(Bar Convent)에서 양성 받은 테레사 볼 수녀가 1821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창설한 동정 성모회(Institute of the Blessed Virgine Mary, IBVM)다. ‘로레토 수녀회’라고도 불리는 이 수도회는 메리 워드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는 수도 공동체다.

 

메리 워드를 창립자로 모시는 두 수도회는 최근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교류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하나의 몸’으로 통합하기 위한 대화와 숙고, 식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12월 6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수도회 (하)


시대 요청에 응답하며 활동 영역 넓혀

 

 

- 한자리에 모인 예수수도회 전체 회원들. 예수수도회 회원들은 설립자 메리 워드의 정신으로 이 시대 현실과 필요를 알아차리고 용기와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수수도회 제공.

 

 

예수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64년이었다. 한국교회와 연을 맺은 계기는 독일 뮌헨-님펜부르크 관구가 한국 미션을 결정했고 당시 총원장이었던 에델부르가 솔츠바허 수녀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다.

 

그렇게 한국에 진출한 첫 그룹은 뮌헨에서 양성을 받은 한국인 회원 5명과 독일인 회원 2명이었다. 이때 로마 총원 참사 아가타 부르퀴너 수녀와 뮌헨-님펜부르크 관구장 타라시아 콘스탄틴 수녀가 동행해 공동체 출발을 축복했다.

 

첫 번째 분원은 서울 오류동에 세워졌다. 청기와 지붕이 특이했던 분원에는 수도회 진출 이전부터 입회를 기다려온 지원자들이 곧바로 받아들여졌고 한국인 종신서원자 박의열 수녀가 양성을 시작하면서 수련소도 개설하게 됐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의 공식적인 초대로 한국에 진출한 예수수도회는 1966년 가톨릭 학교가 없었던 대전 지역에 성모초등학교와 성모여자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먼저 교육 사도직으로 활동 문을 열었다. 1969년에는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해 지역사회 여성 교육에 주력했다.

 

아울러 그 시대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청주교구 충북 보은본당에 수녀들을 파견했다. 무의촌이었던 보은에 성모의원을 개원함으로써 주민들과도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익산에서는 독일 수녀원으로부터 의약품 원조를 받아 사회에서 소외된 한센인 치료에 헌신했다.

 

이런 학교 교육과 의료사도직에 이어 점차 유아교육과 본당 선교, 사회복지, 영성 사도직으로 활동 영역을 확산했다. 한국진출 10년도 안 된 1973년에는 자립 관구로 승격하는 등 비교적 빠르게 성장 발전했다.

 

1993년 수도회 총회에서 박기주 수녀는 제23대 총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는 수도회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권 밖의 회원에게 수도회 통솔을 맡긴 새로운 사례가 됐다. 국제수도회들 가운데서도 아시아인이 총원장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현재 220여 명 회원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여성으로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이웃 선익을 증진함으로써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지녔던 메리 워드 정신으로 이 시대의 현실과 요구를 식별하고 용기와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수도회가 진출해 있는 나라는 총 23개국이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스페인 등 유럽과 칠레, 브라질 등 남미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소임을 펼치고 있다. 회원 수는 14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도요 벗으로서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파견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며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복음 선포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12월 13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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