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14: 하느님 육화의 신비 직접 느껴보기 위해 구유 꾸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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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6 ㅣ No.1490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4) 하느님 육화의 신비 직접 느껴보기 위해 구유 꾸미다

 

 

- 프란치스코는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 탄생을 재현하고자 그렉치오 성당에 구유를 꾸몄다. 그림은 그렉치오 성당의 주님 탄생 프레스코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가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것이 우리 프란치스칸들의 믿음이다. 그분은 가난한 척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인간성의 본질로서 가난을 택하셨다. 그는 노동자로서, 가난한 자로서, 동정녀의 태중에서 자신이 사람이 되시기 위해 청해야 하는 자로서 세상에 들어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세상의 참된 현실을 다시 정리해주셨고, 이를 통해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가난을 통해 인간과 세상 안에 가장 탁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해 주셨고, 우리가 세상 안에서 선물 체험을 다시 할 수 있게끔 해주셨다. 그분은 세상을 좋은 것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고, 하느님의 선을 기다리고 청해야 하는 인간이 되는 가난을 받아들이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과 배척, 박해 그리고 죽음의 체험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선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다시 세우셨다.

 

예수님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응하지 않으셨다. 세상은 그를 왕국의 포목을 가난한 이들에게 파는 부자 상인이 되게 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세상적 계산에 집착하고 있는 인간의 착각이다. 세상은 실질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세상은 하느님의 선성과 모상 안에서 부유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인간성을 취하심으로써 세상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여 당신을 먹이시고 입히시게 하심으로써 세상이 이미 하느님 은총으로 풍요롭고 부유하다는 사실을 회복해 주셨고, 그리하여 이 세상을 재창조해 주셨다.

 

예수님은 줌으로써가 아니라 받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원적 행위를 수행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이 가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당신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하느님의 선성을 회복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6. 소유 없음의 영성 - 프란치스칸 가난 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 탄생을 재현하고자 구유를 꾸몄던 그렉치오라는 곳에 있는 자그만 성당의 벽화에는 두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쪽은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구유에 누여 계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에게 젖을 물려 먹이시는 모습의 그림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의 아기 예수님은 다 발끝에서부터 목 바로 밑에 부분까지 붕대로 감겨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모습은 하느님과 인간 모두에게 온전히 의존하셔야 했던 예수님의 겸손과 가난과 완전한 순종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 ‘소유 없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관계성 안에서 삼위로 일체를 이루시며 우리와 일치된 관계성 안에 계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증거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사랑과 상호보완의 관계성이고, 이후에 조금 더 자세하게 나누겠지만,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핵심이다.

 

프란치스칸들은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다. 첼라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프란치스코는 죄의 어두움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빛의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하여 작은 형제들이 주님으로부터 이 시기에 파견받았다고 말하곤 하였다” (「II 첼라노」 155).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난한 인간성을 통해서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의 심장부이다. 예수님은 가난을 통해서, 그리고 기꺼이 애긍을 받으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상속권을 주셨다. 프란치스코는 인준 받은 수도규칙 6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은 집이나 거처, 그 어떤 것도 자기 소유로 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신뢰심을 가지고 동냥하러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해지셨으니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여러분을 하늘나라의 상속자요 왕이 되게 하고, 물질에 가난한 사람이 되게 하면서도, 덕행에 뛰어나게 하는 지극히 높은 가난의 극치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이들의 땅으로 인도하는 여러분의 몫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이 가난에 완전히 매달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하늘 아래서는 평생토록 결코 다른 어떤 것도 가지기를 원치 마십시오. 그리고 형제들은 어디에 있든지 어디서 만나든지 상호 간에 한 식구임을 서로서로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서로 간에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기 육신의 자녀를(1테살 2,7 참조) 기르고 사랑한다면 각자는 자기 영신의 형제들을 한층 더 자상하게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1-8절).

 

12세기에 그리스도론과 관련한 신학을 전개하면서 그리스도의 육화와 인간성에 대해 강조점을 두기 시작한 것은 이런 전체적인 이해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프란치스코도 이런 교회의 역사적 배경에서 분명히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성을 대중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드로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25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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