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배움터: 복음묵상 기도 (2) 청할 은총, 기도 준비 그리고 복음묵상 기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25 ㅣ No.840

[기도 배움터] 복음묵상 기도 (2) 청할 은총, 기도 준비 그리고 복음묵상 기도

 

 

복음을 천천히 읽고 요점을 정한다면 사실 거기에는 그렇게 정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청할 은총과 관계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가령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요점으로 정했다고 한다면, 이 말씀을 요점으로 정한 이유는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예수님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반대편에 서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저에게도 변함없는 사랑을 주신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요점으로 정했다면, 저 같으면 청할 은총은 ‘주님, 저도 당신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것으로 정할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하느님과의 의식적인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청할 은총에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고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한 구체적인 은총을 요점과의 연관성 안에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기도 준비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복음묵상 기도를 준비한다고 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중에 어떻게 하고 있나 하는 것을 보면 많은 경우 복음 말씀의 구조와 내용을 분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틀린 방법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제가 지도할 때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 말씀의 구조와 내용 분석은, 정말 하고 싶다면, 사실상 요점을 정하기 이전에 이미 끝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 준비는 실천적인 의미의 준비입니다. 내가 정한 요점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서 복음묵상 기도 전까지 하루를 살아보는 것입니다. 요점 말씀을 자주 되뇌이면서 내가 요점 말씀을 직접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가령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을 요점으로 잡았다면, 이 말씀을 되뇌이면서 내가 세상의 빛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 결정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는 것이지요. 세상의 빛으로서 형제들이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현관 유리문이나 또 창문을 닦아 줄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내가 정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나에게 닥쳐오는 어떤 상황이 내가 빛으로서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이런 상황이 주어지거나 마주했을 때 요점 말씀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오후에 내가 혼자서 조용히 산책을 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어떤 형제가 갑자기 찾아와 고민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요점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꺼이 응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기도 준비를 할 수 있는데, 내가 정해서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닥쳐오는 상황 안에서 그것이 기도 준비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도 준비를 하는 것은 보다 쉽지 않지요. 요점 말씀을 늘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 준비를 이런 식으로 하라고 했을 때 어떤 신학생은 좀 난감해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을 외적으로 드러내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아닌가 해서 말이지요. 이런 형제들에게는 다른 형제들도 힘을 내서 기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기도 준비를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기도의 요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나만의 고유한 감각을 지니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기도 준비하는 내용을 소개한다면 주로 구두 닦아주기, 창문 닦기, 현관문 닦기, 빨래 널어주기, 형제들의 청소구역 대신 청소해 주기, 옆방 친구 쓰레기통 비워주기, 방청소 대신 해주기,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조금 일찍 가서 배식 봉사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간식이나 커피 사주기를 하는 형제들도 있는데, 저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시간을 내서 땀을 흘리며 할 수 있는 것, 형제들이 보면 ‘아 저 형제 기도 준비하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을 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여러분도 이 길에 들어섰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끝기도가 끝나면 각자 정해진 장소에 가서 복음묵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 준비가 내가 주체가 되어서 복음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라면, 복음묵상 기도의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내가 기도를 준비하면서 했던 일을 복음묵상 기도 안으로 끌고 와서는 안 됩니다. 어떤 형제들은 기도에 대한 면담을 할 때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기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복음묵상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기도 준비를 하지 못하면 복음묵상 기도를 할 수 없나요?” 우리에게 항상 기도 요점 말씀을 실천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기도 요점 말씀을 정하고 복음의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하고 바로 복음묵상 기도에 들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신부님, 실은 제가 기도 준비를 열심히 하지 못했는데 복음묵상 기도 시간이 너무도 좋았고 짧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복음묵상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랬겠죠. 아무튼 기도 준비와 복음묵상 기도 사이엔 이런 차이점이 있습니다. 복음묵상 기도 시간이 되면 기도하기에 편안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지금 내 앞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식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당신과 보다 친밀한 관계에로 나아오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 시간 함께 해주시길 청합니다. 그리고 나서 청할 은총을 주님께 간략하게 말씀드립니다. 그 다음에 복음의 대강의 줄거리를 천천히 기억해 봅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훑어봅니다. 그런 다음에는 요점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에 잠겨 있으면 됩니다.

 

* 최규화(요한 세례자) 신부는 2000년 사제 수품 후, 2009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교의 신학)를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외침, 2016년 9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최규화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교의 신학)]



3,44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