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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아버지를 보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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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6 ㅣ No.932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아버지를 보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질문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미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계시고, 의식도 없으십니다. 연명치료 거부가 교리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숨이라도 쉬고 계신 아버지를 차마 보낼 수가 없습니다.

 

 

답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분리’라고 합니다. 심리학의 대상 관계 이론에서 아이와 양육자 간의 애착이 중요하고, 분리불안이 생기면 발달상의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분리 공포는 출생 직후부터 시작되는데, 보살피는 사람(주로 어머니)이 없어지면 긴장, 고통, 불안정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오면 긴장감이 줄어들면서 안정을 갖게 됩니다.

 

볼비(Bowlby)라는 심리학자에 의하면, 타인의 죽음을 겪은 후에 상실의 슬픔을 줄이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하거나 필요한 처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상실 혹은 분리불안은 인간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프롬이라는 학자는 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불안, 절망, 죽음 등의 실존적인 고통이 존재하고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합니다. 어떻든 인간은 불안의 존재이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요즘에는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교회는 이전부터 당사자의 의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고해 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사자가 죽음을 직면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정확한 상태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로 환자에게 해악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 연명의료 중단이 연명의료를 지속할 때 생기는 고통을 해소하고 당사자에게 아름다운 마무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 등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는 삶의 고귀함을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없는 말기환자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다뤄야 하고 견뎌내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들은 우리 자신을 허무에 빠뜨리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상실의 체험이 우리가 힘들어하는 고독감에 빠지게 합니다. 상실을 경험하게 될 때, 많은 문제가 예상되며 그중에는 우울감 등도 포함될 것입니다. 삶의 흥미로움도 줄어들고 세상을 떠난 분과의 추억에 젖어서 헤어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붙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가 떠남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자기의 죽음을 미리 맛볼 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관계가 소멸할 때 우리 자신은 크게 무너지게 되며, 새로운 지향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메이라는 학자는 “죽음을 부정하는 데 치러야 하는 대가는 막연한 불안과 자아격리다.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은 죽음에 직면해야만 하고 개인적인 죽음에 직면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누구도 다른 사람 대신 죽어 줄 수도 없고, 죽음은 결국 각자 자기가 맞아야 할 사건입니다. 죽음은 모든 관계의 단절입니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도 그 단절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한, 죽음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이기에 참으로 어려운 사실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 안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분리의 어려움, 헤어짐의 고통, 불안정감 등을 우리가 겪어내야 한다면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 봅니다.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91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7층 [E-mail]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9년 6월 16일, 이찬 신부(성 골롬반외방선교회 · 다솜터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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