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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회고록41: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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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8 ㅣ No.441

[추기경 정진석] (41)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교회법전 번역과 해설서 집필에 20년 정성 쏟아

 

 

- 2000년 4월 서강대 학위 수여식에서 「교회법 해설」을 저술한 업적으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있는 정진석 대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가톨릭교회가 준수해야 할 교회 법규들을 담은 「교회법전」. 교회에 매우 중요한 책자임에도 우리나라에 라틴어와 일본어 대역판으로 출판된 것이 1960년 전후였을 것이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주교는 교회법에 관심이 많아 라틴어-일본어 대역판 교회법전이 출판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내내 걸렸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더 공부해서 내가 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번역하겠다.” 

 

그 당시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일본어 법전은 있는데 한국어 법전이 없으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는 로마 유학 시절 교회법을 전공하면서 라틴어-일본어 대역판 법전을 더욱 많이 찾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것이 많았다. 그때 지도교수 신부가 얼마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로 새 교회법전이 출판될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정 주교는 새로 반포될 교회법전을 자신이 꼭 한국어로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그런데 예상보다 늦어진 1983년에야 새 교회법전이 반포됐다. 정 주교는 당시 청주교구장으로 사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자신처럼 교회법을 공부하는 한국의 신부들과 평신도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정 주교는 새 교회법전이 반포되자마자 혼자 번역을 시작했다. 작업을 시작하니 성령의 도우심이 이어졌다. 정 주교와 같이 새로운 교회법 번역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교회법 전공 사제를 십여 명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신부들과 함께 교회법전을 번역하기로 하고, 주교회의에 참석해 각 교구 주교들에게 이러한 의견을 전달했다.

 

“꼭 필요한 일을 하시는군요! 건투를 빕니다.”

 

주교들의 적극적인 응원에 힘입어 정 주교를 필두로 한 교회법 번역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공동 작업에 들어간 번역위윈회는 매달 한 번씩 모여 사흘간 자신들이 번역한 것을 놓고 토론했다. 매달 토론을 위해 신부들은 합숙하며 작업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토론한 이후에는 각자 한 부분씩 번역을 진행했다.

 

번역이 진행되는 대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사목」에 번역본을 한 부분씩 실었다. 여러 독자들과 신부들의 평가와 비판 등 피드백을 받자는 뜻이 있었다. 번역하는 문장은 대부분 쉽고 짧은 문장으로 작성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정 주교는 교회법전을 공부하던 신학생의 심정으로 돌아가 항상 읽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여러 해 동안 고달프고 외로운 작업을 진행한 끝에 1983년 시작한 번역 작업이 1989년에 끝이 났다. 곧바로 교황청 허가를 받아, 같은 해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출판할 수 있었다. 

 

법전 번역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환경과 다소 달라,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교회법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교회법전에 열정을 쏟은 정 주교는 신자들을 위해 또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교회법전 해설서를 쓰기로 한 것이다. 해설서 작업은 정 주교 단독으로 진행했다. 그는 해설서 머리말에 책을 낸 이유를 세심하게 적었다.

 

- 교회법 해설서.

 

 

“교회법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태어난 배경과 유래를 잘 알아야 한다. 대체로 로마법을 이어오는 교회법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질적인 사회 환경과 문화 전통의 소산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겨우 200년 남짓하고 신자 수도 국민의 5%에 지나지 않으므로, 한국 교회는 신자들에 대한 사목 활동보다는 미신자들에 대한 전교 활동에 주력했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법은 전교 활동보다는 사목 활동을 위하여 제정되는 것이니만큼,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교회법의 유용성을 신자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별로 없었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로 이 근래에 한국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여 신자 수가 300만 명에 이르고 여러 수도회들과 각종 신자 단체들이 설립되며 이들을 올바르게 사목하기 위하여 교회법에 관한 지식이 아쉬워지고 있다.

 

때마침 1983년 새 교회법전이 공포되었기에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국어판 교회법전이 나와도, 그 내용이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부분이 적지 않으므로 불가불 해설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교회법 해설서를 쓸 능력이 모자람을 알지만, 교회법전의 번역을 성실히 하기 위하여 공부한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공하여야 한다고 여겼다. 필자는 이 해설서가 주로 교회법 강의가 비교적 부족한 신학생들에게 참고서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해설을 서술하지 아니하고 요점만 간추리는 형식으로 썼다.(후략)”

 

그렇게 정성껏 작업한 해설서가 장장 15권에 이르렀다. 도중에는 우리 현실을 반영해 한국 교회 사목의 준거가 되는 규범을 정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편찬의 책임을 지기도 했다. 쉼 없는 여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정 주교는 먼저 펴낸 교회법 해설서에서 아쉬운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증보판도 편찬했다.

 

사실 교회법 해설 제3권을 집필할 때까지는 집필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초반에는 아주 간략하게 저술했다. 그러나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죽기 전까지 끝마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증보판을 시작했다. 교회법 해설 증보판 제1~3권은 초판보다 분량이 5~6배가량 더 많았다. 해설서는 2002년에야 열다섯 번째 최종본을 발간할 수 있었다. 번역하고 해설서까지 쓰는 데 20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해설서를 만들겠다는 자부심으로 정 주교가 집필에 열중한 세월이었다. 

 

해설서 제4권부터는 증보판을 낼 여유가 없었다. 정 주교는 해설서 작업을 하던 중 서울대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교회법 해설에 매달릴 여유가 없어서 부득이 해설서 제4권의 증보판 작업은 중단했다. 그러던 2008년 서울대교구 한영만 신부가 정 주교의 해설서 15권을 요약해 「교회법전주해」라는 책을 출판했다. 정 주교가 뿌린 씨앗이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어렵고 힘든 교회법전 번역과 해설 작업을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해오셨나요?”

 

어쩌면 정 주교는 교회법전에 한평생을 온전히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학생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의 평생 작업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에게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누군가는 교회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니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1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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