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일)
(녹) 연중 제21주일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교회법

생활 속의 교회법54: 제 배우자는 제가 선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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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1 ㅣ No.434

생활 속의 교회법 (54) 제 배우자는 제가 선택했어요

 

 

과거에는 혼인 당사자의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결정하고 혼인을 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선택하여 혼인을 시키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 “누가 배우자를 선택했나요?” 하고 물어본다면, 모두 “물론 내가 내 배우자를 선택했어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지금의 내 배우자를 온전히 내가 선택한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은 모든 가능성 가운데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혼인 적령기에 있는 어떤 사람은 자신과 혼인이 가능한 모든 이성들 중에 한 사람을 자신의 배우자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칠레 혹은 알래스카나 러시아 등지에 살고 있는 이성과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제주에 살고 있는 이성들 중에서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더 나아가 교제를 할 수 있는 상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자신과 혼인이 가능한 지구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불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아주 소수의 몇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하면서 내가 배우자를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자신이 만나서 친교를 맺게 되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혼인을 맺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실제로 매우 한정된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고 그들 가운데에서도 자유롭게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수 없었으면서 ‘내 배우자는 내가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사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부부관계를 맺는 것에는 우리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며 신성한 무엇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언제나 종교에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혼인 문제에 종교가 개입을 하냐고 반문하시지만, 실제로 모든 민족과 언어와 문화권 안에서 혼인이라는 제도가 생길 때부터 최근까지 혼인예식은 언제나 종교예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우리가 전통혼례라 하는 것도 불교식 혼례이거나 유교식 혼례이고 흔히 주례자 앞에서 두 명의 들러리를 세우고 혼인서약을 하고 서로 혼인반지를 주고받는 서양식 혼인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정통 천주교 혼례의 현대식 변형에 불과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한 사람이 주님의 사제직을 받아들이는 사제성소나 한 사람이 장엄하게 수도서원을 발하는 수도성소와 마찬가지로, 혼인도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인간이 받아들이고 혼인서약을 하는 혼인성소(聖召, 거룩한 부르심)로 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게 되는 것 자체와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서로 사귐을 갖고 결국 부부의 연을 맺는 일이 온전히 인간적인 차원의 일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미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개입(인연, 因緣)이 이루어지고, 그 인연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성소, 聖召)에 인간이 어떠한 강박도 없이 온전한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것인 혼인성소의 삶입니다. 사제성소와 수도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혼인성소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두 배우자가 함께 하느님 앞에 서약하는 것인 혼인예식인데 어찌 합당한 방식으로 준비되고 종교예식으로 치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천주교 신자들로서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해야 하는 의무를 엄연히 지니고 있고 또한 성당에서 혼례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예식장에 가서 성당에서 거행하는 정통 성사예식을 흉내 낸 소위 서양식 혼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2019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제주주보 3면, 사법 대리 황태종(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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