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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럽의 도시와 교회사 이야기: 아헨(Aa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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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0 ㅣ No.1230

[유럽의 도시와 교회사 이야기] 걸어서 세계 교회사 속으로

 

 

5. 아헨(Aachen)

 

이번엔 다시 독일로 가보자. 바로 아헨이란 도시이다.

 

아헨을 이야기하려면, 카알 대제를 언급해야 하는데, 그를 이야기하려면 게르만족의 하나인 프랑크족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

 

5세기 말,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하면서, 게르만족의 대거 유입으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라벤나의 동고트족과 아프리카의 반달족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동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고, 에스파니아의 서고트족도 아랍인들에 의해 멸망되면서, 유일하게 존속되고 확장된 게르만족이 바로 프랑크족이었다.

 

프랑크족의 초대 왕인 클로비스(또는 클로드비히, 466-511년)는 승전의 기념으로 30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랭스의 주교 레미지오에게 세례를 받아,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을 한다. 이 사건은 세계사에서 문화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불린다.

 

하지만 클로비스의 할아버지인 메로비스의 이름을 딴 메로빙거 왕조가 분할상속과 왕위공동 세습제의 원리로 분열되고 쇠퇴하면서, 궁재인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국왕 힐데리히 3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름으로 프랑크 왕국의 새로운 왕조를 세우게 된다. 그 왕조가 바로 피핀의 아버지인 카알 마르텔의 이름에서 비롯된 카롤링 왕조였다. 하지만 왕가 혈통을 지니지 못한 피핀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회로부터의 승인과 도유(塗油), 축성(祝聖)을 생각해낸다. 결국 피핀은 ‘왕권을 박탈당한 국가영수보다 왕가의 지배권을 받은 통치자를 왕으로 청해야한다’는 교황 자카리아의 승인을 얻게 되며 이어서 마인츠 대주교인 성 보니파시오에게 세례 받아 대주교와 성직자들에 의해 왕으로 축성된다. 이로 인해 교황이나 대주교, 혹은 주교가 유럽 각국의 황제나 왕의 즉위를 승인하는 전통이 유래되었다.

 

피핀은 더 나아가 파리 생드니 대성당에서 교황 스테파노 2세로부터 왕으로 도유(塗油)되었으며(754년), 그의 아들 카알과 카를로만은 왕위 후계자로 축성되었다. 이때 스테파노 2세 교황은, 피핀을 로마인들의 보호자(patricius romanorum)라고 선언하게 된다. 현재 피핀과 그의 아내 베르트라다의 무덤이 생드니 매성당에 있는데, 역대 프랑스 국왕들도 모두 이 성당에 묻혀 있다.

 

프랑스어로는 샤를 마뉴(Charle magne), 독일어로는 카알 데어 그로쎄(Karl der Grosse), 라틴어로는 카롤루스 마뉴스(Carolus Magnus)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카알 대제(재위 768-814년). 그는 후대 사람들이 대(大)자를 붙일 정도로 명성이 매우 뛰어났으며, 역사적으로도 그 영향력이 전 유럽에 걸쳐져 있다. 지난 3월호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아버지 피핀과 함께 롬바르드족이 점거했던 지역인 라벤나를 포함해 중부 이탈리아의 모든 영토를 교황에게 증여할 것을 약속했고, 이를 실현시키면서 교황령(敎皇領)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아버지 피핀과 마찬가지로 카알 대제 또한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성탄절 미사 때,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제관(帝冠)을 받았으며(800년), 서로마의 황제, 카를루스 대제(Carolus Augustus)로 임명된다.

 

794년, 카알 대제는 오늘날 독일 북서부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아헨에 그의 궁정과 왕실 교회를 지음으로 사실상 이곳을 수도로 정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왜 프랑크 왕국의 수도인 파리에서 아헨으로 천도를 하였을까?

 

로마 시대의 신화에 보면, 치료의 신인, ‘그라누스’가 나오는데, 그의 이름을 딴 ‘그라누스의 온천’(Aquae Granni), 또는 중세 시대의 ‘아퀴스 그라니’(Aquis Grani), ‘아퀴스 그라눔’(Aquis Granum)이라고 불리어진 아헨은 이름 그대로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였다. 로마 군인들이 전쟁의 피로를 이곳에서 풀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도시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점도 매우 특별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카알 대제가 수도로 발전시키면서, 매년 겨울마다 이곳에 머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유럽의 아버지’(Pater europae)라고도 불렸던 카알 대제는 아헨을 학자들과 성직자들의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는데, 궁정학교뿐만 아니라 유명한 수도원과 주교좌성당 소속의 학교에서도 학문과 예술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당시 카알 대제와 학자들이 고대의 저서들을 수집, 보관, 필사한 덕분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고전 본문이 전해지고 있다고도 한다. 자신을 ‘왕이요 사제’(rex et sacerdos)라 부르게 할 정도로 프랑크 교회의 최고 지도자요, 보호자로서 자신의 직무를 열정적으로 수행했던 카알 대제, 하지만 그만큼 교회는 더 제국에 예속되어 갔고, 성직자들 또한 국가의 관리로 전락되었다. 카알 대제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아헨이란 도시로 들어가 보자.

 

마인츠 대성당, 트리어 대성당, 쾰른 대성당과 함께 독일의 4대 성당으로 불리는 아헨 대성당.

 

아헨 대성당은 독일의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1978년) 건물이다. 비잔틴 양식인 라벤나의 산 비탈레성당을 본보기로 삼은 성당인데, 795년에 기공식을 가졌으며, 803년 완공되었다. 성당의 수호성인은 성모 마리아이다.

 

이 성당에서는 카알 대제의 통치이념을 잠시 엿볼 수가 있다. 제대 맞은편 서쪽 정면에 위치한 카알 대제의 옥좌(Karlsthron)는 맞은편 예수님의 이콘(lcon)과 마주보고 있는데, 이는 세상구원을 위해 동쪽에서는 예수님이, 서쪽에서는 황제가 온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후, 오토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이 대성당에서 거행했고(962년), 이후 페르디난트 1세의 대관식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거의 모든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그 옥좌에 앉았다.

 

그밖에도 대성당 내부에는 카알 대제의 유골함(Karlsschrein)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허리에 둘렀던 옷과 아기 예수가 썼던 포대기, 성모 마리아의 옷,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참수당할 때 입었던 옷 등이 담겨 있는 마리아함(Marienschrein)도 있다. 매년 7월에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참배하는 전통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돔 아래에 설치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만들었다는 48개의 촛대, 그리고 바르바로사 샹들리에(Barbarossaleuchter)도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카알 대제의 궁전이 있었던 아헨 시청(Aachener Rathaus), 아헨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인 성 아달베르트 성당, 시청 앞의 마르크트 광상(Marktplatz), 중세기의 공동 목장이며 청형이나 민속축제가 열렸던 그라스하우스(Grashaus), 그리고 14세기에 건축된 귀족의 집인 뢰벤슈타인(Lowenstein), 그 건물 모서리에 있는 보헤미아의 수호성인 성 네포묵의 동상, 아헨 온천의 원천이 있는 엘리젠브룬넨(Elisenbrunnen) 등 여러 명소가 있다.

 

물론 아헨 하면, 온천을 빠트릴 수가 없다. 시 외곽으로 가면 그 유명한 카롤루스 온천(Carolus Thermen)이 있다. 온천 입구에는 1789년부터 그곳을 방문한 유명 왕족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판이 걸려 있다. 황제 카알의 사후 200년이 지나고, 그의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에 뼈만 남은 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무릎 위에 펼쳐진 성경이었는데, 그 성경 구절은 바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마태 16,26)였다.

 

카롤루스 온천탕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카알 대제가 살았던 당시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듯싶다.

 

[외침, 2020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황치현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세계교회사, 라틴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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