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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사심판가의 마귀와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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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7 ㅣ No.1040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사심판가’의 마귀와 수호천사

 

 

‘사심판가’는 사람이 죽은 뒤 바로 맞닥뜨려야 하는 현세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개별 심판에 관한 노래이다. 이 천주가사는 주님 대전에서 받을 사심판의 지엄함을 묵상하고 회개와 보속을 통하여 천주의 자녀다운 태도로 살아가기를 촉구하고자 창작되었다.

 

 

통회와 보속을 하지 않은 자를 책망하다

 

이 작품은 「박동헌본」과 「김지완본」에 전해 온다. 모두 4음보 92행으로 이루어졌으며, 시어의 일부가 다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같다. 「박동헌본」의 ‘사심판가’는 첫머리에 ‘최도마신부저술’이라 명기된 ‘선종가’와, 말미에 ‘조선최신부저술종’이라 명기된 ‘공심판가’ 사이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라 학계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친작 여부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이를 단정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 노래는 단락의 흐름을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인 1-33행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일로서 개별 심판에 대한 대비책으로 구성되었다. 곧 인간은 누구나 죽은 뒤 심판받을 운명이므로, 심판의 엄함을 묵상하여 생전에 죄의 통회와 보속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후반부인 34-92행은 사후의 일로서 개별 심판의 장면들로 구성되었다. 하느님과 수호천사, 마귀가 등장하고 죄인을 책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심판받는 죄인은 돌이킬 방도가 없어 만시지탄에 빠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특히 수호천사뿐만 아니라 마귀도 원고로 등장하여, 살아있을 때 통회와 보속을 하지 않은 자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하는 대목이 신랄하다.

 

‘사심판가’의 34-47행은 마귀의 말을 대변한다.

 

흉포한 마귀들은 주대전(主臺前)에 권고하여

사언행위 그릇함을 세세력력(細細歷歷) 기록하여

낱낱이 기록하니 이사람이 진교시(進敎時)에

영광체면 다끊기로 주대전에 허원하고

나를품고 내말들어 배주배은(背主背恩) 이단하고

내유감(誘感)을 함께좇아 공은사은(公恩私恩) 저버리고

중개하신 구속지은(救贖之恩) 값을내어 사겠으나

주의의자(義子) 싫게여겨 나의말만 들었으니

내공비록 적사오나 내공되기 제원(願)이라

천당으로 상주심은 대답하지 아니하나

지옥으로 벌하심은 제가즉시 대답하니

지공(至公)하신 천주시여 어서내게 붙이소서

참혹하다 죄인이여 변백발명(辨白發明) 할말없어

절통하고 애닯을손 원한자기(怨恨自己) 따름이라

 

마귀가 심판장에 등장하여 악인의 죄악상을 빠짐없이 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생동감과 사실성을 높이는 특이한 장치이다. 천주교에 입교하고서도 세상의 영광과 체면을 끊지 못하였고, 천주의 의로운 자녀가 되기를 거부하여 구속의 은혜를 저버렸으며, 마귀의 유혹을 좇아 지옥 벌을 스스로 원했다는 것이다.

 

이에 죄인은 변명할 길도 없이 자신을 원망할 따름이다. 「신명초행」의 ‘사심판’에서 “범죄한 것 다 결(缺)한 바의 헛말도 틀림이 없이 하소하는지라 성경에 이르시되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하시니”와 흡사한 대목이다. 심판 날에 마귀가 천주 앞에서 죄인이 저지른 범죄를 빠짐없이 고할 것이니 살아있을 때 조금의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에페 4,27)라는 성경 말씀까지 인용하며 현세에서 악행을 경계하라고 촉구한다.

 

바로 이어지는 48-69행은 수호천사의 말을 대변한다.

 

호수천신 돌아보고 변백구원(辨白救援) 간청하여

일생은혜 저버림을 사사빨리 증거하여

엄책하여 이른말씀 바른길을 인도하나

사특함을 아니끊고 피죄추덕(避罪追德) 아니하고

악한벗을 끊게하나 찾아가며 범죄하고

통회고해 기회주어 천주성총 얻게하나

명백고해 아니하고 진절통회 없었으며

사죄지은(赦罪之恩) 얻었으나 즉시다시 또범하고

마귀너를 모해하여 지옥길로 이끌거늘

유감(誘感)인줄 밝게알고 피죄않고 들었으니

어렵고도 흉악하다 이를어찌 구하리오

 

심판을 받는 자는 수호천사에게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수호천사는 오히려 죄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천주의 은혜를 저버린 사실을 빠짐없이 들었다. 사특하여 죄를 끊거나 덕을 좇지 아니하였고, 진정한 통회와 고해를 하지 않았으며, 악한 벗들과 함께 마귀의 유혹임을 알면서도 찾아서 죄를 저지르고, 수호천사인 자신의 인도와 도움마저도 외면했다고 한탄한다. 수호천사의 탄식이 계속 이어진다.

 

천주께 명을받아 평생너를 호수하며

수유불리(須臾不離) 함께있어 사사곳곳 도와주나

나의말은 아니듣고 마귀말만 들어좇아

무수죄만 지었으니 이제는 할수없다

지공하신 천주께서 공의정벌(公義定罰) 하옵시니

천신에게 바람없고 지옥영고(地獄永苦) 받겠구나

사람사람 양심주사 사욕편정(邪慾偏情) 가리워도

평생에 지은죄악 낱낱이 눈에뵈고

광명하다 심판때는 사욕편정 없었으니

죄지을때 모양이며 연유대략 드러나니

어렵고도 흉악하며 놀랍고도 부끄럽다

 

수호천사는 죄인을 평생 수호하였지만, 마귀의 말만 따라 무수히 많은 죄를 지었으니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한다. 결국 지극히 공정하고 엄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라 단언한다.

 

‘사심판가’에 등장하는 마귀와 수호천사의 언급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님(마태 4,1-11)을 떠오르게 한다. 40일을 단식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고 하시며 재물과 명예와 권세에 대한 마귀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다.

 

오늘날의 우리가 신앙 선조들이 늘 경계했던 세속의 허망함, 육신의 사욕 편정, 그리고 악마의 유혹에 어떠한 태도로 맞서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믿음과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삼구(三仇)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호천사의 인도와 도움, 그리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큰 은혜가 있기에 그처럼 어렵고 험한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심판의 날, 원고로 나선 마귀가 궁색하게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고, 수호천사가 비난보다 칭찬으로 하느님께 진언한다면 이보다 잘 산 삶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며 하느님의 편에 서서 살기로 다짐하는 까닭이다.

 

“수호성인이시어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으로 계간지 「평신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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