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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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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3 ㅣ No.1627

[복음으로 세상 보기]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아이 일하던 곳을 갔었습니다. 갔는데, 너무 많은 작업량과 너무 열악한 환경이, 얼마나 저를 힘들게…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이런 곳에 우리 아들을 맡기다니. 아무리 일자리 없어도, 놀고먹는 한이 있어도, 이런 데 안 보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살인병기에 내몰겠습니까.”(고 김용균 씨 어머니의 말씀 중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죽임을 당한 24살의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의 절규입니다. 이 절규는 젊은 노동자 어머니의 절규가 아니라 위험에 노출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어머니들의 절규이고 분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절규이며 분노이고, 하느님의 절규이고 분노입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공장을 둘러보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빨리 나오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작업현장에서 자기 아들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죽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미 이 발전소에서 지난 9년 동안 무려 12명의 노동자가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국회국정감사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가 “제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더 이상 옆에서 죽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했던 곳이었습니다. 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수년간 많은 노동자가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요?

 

한마디로 돈 때문입니다. 이윤과 효율만을 추구해온 자본에 있습니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위험한 일은 하청을 줘서 위험을 외주화 했고, 2인1조로 일해야 하는데 입사 3개월 된 신입사원을 혼자 일하게 했습니다.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아 매년 많은 산업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노동자 1명이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최근 3년 동안 4건의 사고가 발생해 4명이 숨졌습니다.

 

발전소는 숨진 노동자가 있는데도 무재해 인증을 받아 재해 방지에 노력했다며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 여 원을 감면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재해 포상금이라며, 정규직 직원들에게 477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24살 노동자는 하루 12시간 2교대 근무하면서 월 160만원의 임금을 받다 세 달 만에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한 것입니다. 먹지 못한 컵라면 세 개와 과자를 남겨놓고….

 

 

불안정하고 정당하지 않은 고용은 사람들을 죽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위험의 외주화는 단지 태안화력 발전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사회 노동현장 전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고용불안과 살인으로 내모는 작업환경 속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고귀한 것이고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자녀들에게 그 직업을 권하겠습니까?

 

교회는 줄곧 노동의 중요성 강조하면서 노동의 고귀하고 신성한 가르쳤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은 하느님이 세우신 사랑의 계획 일부입니다. 우리는 땅을 일구고 모든 피조물에서 나온 산물을 돌보며, 그럼으로써 창조의 노동 안에서 함께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노동은 인간 존엄의 기본입니다. 여태 일해 오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언제나 행동하시는 하느님과 닮게끔 합니다. 노동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능력을, 나라의 성장에 기여할 능력을 부여합니다.”(2013년 노동자 성 요셉 축일) 라고 노동의 고귀함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과 노동자는 멸시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 노동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무시와 멸시, 착취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 회칙에서 노동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나아가 집단적인 경제적 투자로서의 노동력을 대하는 자본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그로인해 기업의 최대 이윤 추구와, 노동시장에서의 갈등과 착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11항)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2018년 유엔이 정한 ‘사회정의의 날’에 노동과 일자리에 대해서 “고용불안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건강을 해치고, 가족들을 피를 말리며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불안정하고 정당하지 않은 고통은 사람을 죽입니다. 일자리는 인류의 우선과제입니다.” 라며 노동은 단순히 생계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안정하고 정당하지 않은 고용은 사람들을 죽인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뿐 아니라 일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야

 

또한 교황은 2013년 노동자와의 만남에서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동을 바꾸고 노동의 고위함과 신성함을 되찾기 위해서 사람과 노동을 중심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사람과 노동을 중심에 되돌려놓으십시오. 위기는 경제뿐만 아니라, 윤리, 영성, 인간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 위기의 뿌리에는 개인들과 권력집단 모두에게서 공동선에 반하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태까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소득과 이익의 법칙을 밀어내고 사람과 공동선을 중심에 되돌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분명히 노동입니다. 인간의 참된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노동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 사회전체와 모든 구성원들은 존엄성의 원천인 노동을 주요 관심사로 삼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정치 및 경제 기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2013년 9월 22일 사디니아 섬 방문 노동자들과의 만남, 연설문)

 

가톨릭교회 교리서 2428항은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타고난 능력의 일부를 발휘하고 실현한다. 노동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 일의 주체이며 목적인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가르침처럼 사람은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일의 주체이고 목적이 이루어질 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고,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윤보다 생명이, 효율보다 안전이,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뿐 아니라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이는 노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살리는 노동이 되고,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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