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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휴머노이드 시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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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1551

[4차 산업 혁명과 그리스도인] 휴머노이드 시대의 미래

 

 

‘휴머노이드’란 인간을 닮은 로봇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휴머노이드를 ‘휴인’으로 부르고자 한다. 인간은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활용하고자 기능형 로봇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두 발로 서서 걷거나 뛰고,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더욱이 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을 중심을 잡고 걷기란 매우 어렵다. 현재도 식당에서 시중을 들거나 안내하려고 개발된 휴인들은 두 발 대신에 바퀴를 달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을 한 피조물을 만들려는 인간의 욕망은 이제 거의 실현 단계에 와 있다. 최근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점프해서 뒤로 회전하여 착지에 성공하는 동작까지 가능한 로봇이 개발되었다. 이제 휴인이 물리적으로 인간과 별차이 없는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휴인의 등장과 나타날 현상

 

휴인의 보급이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여 그 문제점과 해결책을 함께 찾아야 한다. 영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휴먼스’(The Humans)는 이러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프로 골퍼보다 골프를 더 잘 치고, 외과 의사보다 수술을 더 잘하며, 가정 내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아빠와 엄마의 역할도 더 잘해 내는 휴인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점차 갈등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학습 의욕을 잃게 되고, 자괴감도 들며, 완벽하지 못한 가족에게 싫은 감정도 드러낸다. 드라마를 계속 보노라면 등장인물들이 오히려 가족보다 휴인을 더 좋아하게 되는 드라마 속 씁쓸한 현실에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분명 초기의 휴인은 인간의 보조자 역할을 하며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임무를 맡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결국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할 휴인이 모든 일을 처리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인간은 여전히 감성적인 부분과 창의적인 부분에서 휴인보다 인간이 낫다고 낙관한다. 그러나 이미 62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인공 지능 로봇 ‘소피아’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소피아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홍콩의 로봇 제조 기업인 ‘핸슨 로보틱스’가 만든 로봇이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욱 개발되 인간의 모든 감정이 입력되면 어떻게 될까? 그 어느 배우보다도 감정적으로 풍부해진 휴인이 각 분야에서 이른바 ‘메소드 연기’를 펼친다면 장차 연예인이 설 자리가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3월 인공 지능이 쓴 소설이 ‘호시 신이치 공상 과학 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흐린 날이었다. 방안은 언제나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 씨는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시시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소설은 인공 지능이 호시 신이치의 소설 1,000편을 학습한 뒤에 만든 창작물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특정인이 부활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모습과 행동은 물론 표정까지도 학습하여 휴인이 이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 기술을 토대로 인간보다 지능면에서 더 놀라운 휴인이 탄생할 날이 머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휴인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바둑의 수를 계산하고 경우의 수까지 학습하는 시스템을 만든 인간은 이제 인공 지능을 이기기 어렵게 되었다. 의료계에서는 그 어떤 의사보다도 더 정확하게 병을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동일하게 진행될 것이다.

 

휴인은 인간이 꿈꾸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휴인을 하인처럼 부리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담은 영상을 사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넘어, 돈만 많다면 이를 휴인에게 입력하여 휴인을 통해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로보칼립스와 로보티즘

 

‘로보칼립스’(robocalypse)란 ‘로봇’과 종말을 뜻하는 라틴어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합성어로, 로봇으로 말미암은 종말을 의미한다. 휴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인간의 미래를 우려한 단어이다. 현재도 수많은 로봇이 생산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휴인은 그러한 차원을 넘을 것이라는 데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는 변해 왔다. 인간은 일을 줄이고 편하게 살고자 기술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인간의 일자리가 휴인으로 말미암아 사라지더라도 인간은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자리 감소를 먼저 걱정하기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인류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그때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왔다. 한 예로, 마이크로소프트 기업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주장한 로봇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그는 로봇이 내는 세금을 고령자 직업 교육과 학교 확충 등의 복지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원지가 불분명하고 근거가 불명확한 ‘포스트-휴머니즘’이나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박론보다는 ‘로보티즘’(robotism)에 대한 논의가 더 시급하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휴머니즘’이라 하듯이, ‘로보티즘’이란 로봇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로봇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로봇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어떻게 정의 내려 확보하는지도 중요하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 소설가 아이작 애시모브가 1942년 처음 언급한 뒤 이미 오래 전에 세워진 ‘로봇 3원칙’은 한마디로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규정일 뿐이다. 살상용 로봇이 버젓이 전쟁의 무기로 투입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사실상 끊임없이 인간을 살상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던 인류가 로봇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상상해 보면, 다가올 미래는 암울해진다.

 

뉴스를 통해 경찰의 총을 맞아도 단번에 죽지 않는 휴인이 저지른 대량 살상 소식을 곧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 테슬라모터스의 회장인 일론 머스크가 그 위험성을 경고하여 잘 알려진 이른바 ‘킬러 로봇’은 더욱 우려되는 기계이다. 명령만 내려진다면 손바닥보다 작은 소형 드론이 곧바로 얼굴 인식 기능을 통해 특정한 사람을 찾아가 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지능 휴인의 전망

 

앞에서 언급한 휴인 소피아가 2017년 10월 12일 유엔 경제 사회 이사회 정기 회의에 참석하여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대화에서 “인터넷이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을 위해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소피아는 “인공 지능을 활용하면 에너지와 식량을 전 세계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는 인공 지능을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그 가능성에 대한 대화의 장으로 마련한 이벤트였다.

 

2016년 구글의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인류 대표로 나선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물리쳤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한다. 세기의 대결에서 컴퓨터가 인류 최고의 지능을 이김으로써 그 특이점을 넘어선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인간이 컴퓨터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인간 창조의 신화를 보면 신은 신보다 더 뛰어난 인간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휴인을 만들어 냈다. 인간이 로봇을 학습시켜야 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 휴인에게 배워야 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휴인이 지능 면에서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움직임과 외관에서 아직 구별할 수 있지만 머지않아 영화 속 터미네이터처럼 부서져서 내부 기관이 드러나지 않는 한 적어도 외관과 대화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휴인도 등장할 수 있다.

 

교통경찰에게는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과속 카메라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듯 대체로 사람들은 컴퓨터 시스템의 결과에 순순히 따르는 편이다. 컴퓨터에는 편견이란 것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소액 재판에 이미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가 판사보다 더 중립적인 판결을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다면 언젠가는 인간 스스로가 초지능 휴인을 지도자로 숭배하고 순종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 용환승 -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 한국정보과학회 정책기획위원장과 부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용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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