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토)
(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강론자료

2020-09-26.....연중 제26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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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2358

                                            연중 제26주일 가해

에제키엘 18,25-28      필리피 2,1-11      마태 21,28-32

2020. 9. 27.

주제 : 나는 선한 사람이 돼야 하는가?

사람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선한 사람악한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선한 사람과는 내가 어울려도 손해는 없고 이익이 있다고 말할 것이고, 약한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나에게 잘못된 일이 생길까 하고 겁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선한 사람이 될 것이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으면 만나는 일조차 겁내는 악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별은 내가 만나는 '사람의 겉모습'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보다는 그가 내게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예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악하다고 규정한 사람에게도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으며, 그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도 세상을 향해서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를 헛갈리게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고, 그들을 다르게 대하는 모습은 어떤 기준이어야 하겠습니까?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드러낼 모습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거나 대하는 모습을 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비교하는 사람인 내가 드러내는 기본적인 태도는, 나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악하거나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러하냐고 질문하면, 누가 내 마음에 드는 대답을 정확하게 말할 사람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그러합니다. 정말로 나는 올바른 길을 가는 선한 사람이고, 악한 모습으로 단정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까요? 그에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대하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싫다고 먼저 말한 다음에 마음을 바꾸어서 아버지의 뜻을 따른 첫째아들과 아버지의 뜻에 맞는 표현대로 대답은 했지만 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또 다른 아들의 비교입니다. 두 사람의 경우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는지 물으셨고, 사람들은 쉽게 큰아들이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큰아들에게도 아쉬운 일은 있습니다. 큰아들은 좋게 행동할 것이면서도 어째서 처음부터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람의 삶일까요? 사람이기에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뜻이겠습니까?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나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올바르게 산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로 세상에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좋은 일입니다.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될 일은 아무 일도 없겠지만, 내가 그렇게 자신감이 있는 삶을 드러낸다면, 분명히 하느님의 축복을 얻는 일에도 가까운 데에 머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니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고, 내 생각만이 있는 세상이라면 다른 사람이 본받을 수 있거나 내가 좋은 영향을 주는 좋고 올바른 결과가 나의 삶으로 만들어지겠느냐고 질문할 수 있고, 그 일이 가능한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다른 사람을 구별하여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한 모습으로 내 삶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첫째 독서인, 에제키엘예언서는 히브리인들이 바빌론 유배에 가 있을 때를 배경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유배에 처한 상황이라면 그 일이 해결되는 것이 첫 번째 바람이었을 것인데, 에제키엘 예언자는 히브리인들의 삶에 새로운 결과가 찾아오게 하는 방법으로 공평의 문제를 말합니다.

 

사람이 늘 선하고 착하게만 살 수 있을까요? 선과 악이 있는 세상에서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일이 사람이 드러내는 기본적인 모습일 수는 있습니다. 예언자가 생각한 공평의 문제는 선한 사람으로 살다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악한 사람으로 살았더라도 그 악한 모습을 버리고 선한 사람으로 돌아서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사람이 선과 악의 길에서 시소(=긴 널판의 한가운데를 괴어 그 양쪽 끝에 사람이 타고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 기구)를 타면, 하느님을 사람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비난하며, '편파적이고 불공정하신 분'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은 사람의 사정만을 우기는 개인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끝과 관련하여, '유종의 미'라는 표현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쓰기도 씁니다. 또한, 처음부터 사람은 바른길을 가야한다는 뜻에서,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표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의 때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사용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드러낼 할 삶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의 삶에 관해서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삶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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