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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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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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30 ㅣ No.1239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너를 위해 기도할게.” 신자가 되고 가장 많이 들었으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데에 꽤 오래 걸린 말이다. 나와 하느님 사이에 남들의 기도가 쌓일수록 내 부족함을 더 많이 드러내는 척도 같았고, 갚아야 할 빚처럼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영화 ‘뷰티풀 데이 인 디 네이버후드’(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는 실제 미국에서 30년 넘게 방영했던 TV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를 다룬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사람들은 어디서든 ‘로저스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은 로저스 아저씨(톰 행크스)가 아니다.

 

화면은 오히려 그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 로이드 보겔(매튜 리즈)의 시선을 따라 흐른다. 보겔은 평소 신랄한 르포 기사를 주로 써 온 터라 모두가 보겔과 인터뷰하기를 꺼렸다. 유일하게 인터뷰를 수락한 사람이 로저스 아저씨였다.

 

첫 만남에서 로저스 아저씨는 보겔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실 보겔은 오래 전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와 마주쳐서 주먹다짐하다가 생긴 상처였다. 사람들에게는 운동하다 다쳤다고 둘러댔지만, 이상하게 로저스 아저씨에게는 사실대로 말하고 만다.

 

왜일까? 보겔의 마음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편집장에게 등 떠밀려 맡은 인터뷰를 얼른 끝내고 싶었을 텐데, 보겔은 자꾸만 로저스 아저씨를 만나러 간다. 때론 화내고 때론 한숨 쉬면서도 로저스 아저씨와 함께하는 시간에 녹아들고 있었다.

 

전 아이 한 명의 눈을 바라보듯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거죠.

그 아이의 감성과 요구에 최대한 공감하면서요.

- 프레드 로저스의 대사 중에서

 

 

닫힌 마음을 열면 진짜 당신이 보이죠

 

사람들이 로저스 아저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화면 속에 있지만 나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누그러지는 건 햇살 아래 아이스크림이 녹을 때보다 빠르다.

 

그러나 보겔은 처음 만난 자신에게 애정이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로저스 아저씨가 부담스러웠다. 그가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면 마치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만국기를 끝없이 꺼내는 것처럼 마음 깊은 곳의 감정들이 줄줄이 딸려 나와서 흠칫 놀라곤 했다.

 

사람들의 기도를 부담스러워했던 내 마음도 비슷한 당혹감이었다. 내 바람이 이뤄지고, 내 어려움이 해결되길 기도해 주겠다는 이들 앞에서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느님 앞에서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내 욕구와 감정이 누군가의 기도 지향이 된다니, 일기장을 만천하에 공개당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내 부족함과 어려움을 들킨 것만 같아서 부끄럽고 민망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로저스 아저씨에게 보겔은 이문을 갖는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왜?” 그 대답을 보겔은 스스로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로저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보겔의 마음속 골방에 가둬둔 분노와 죄책감이 본 모습을 드러내고 상처도 비로소 회복을 시작한다.

 

 

제 이웃이 되어 주실래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면, 내가 모든 걸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이 조금 덜어진다. 나 혼자뿐이라는 두려움도 조금 덜어진다. ‘하느님이 들어주시겠어?’ 하는 의심도 조금 가라앉고, 하느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오만도 조금 내려놓게 된다. 그 대신 그분 앞에서 솔직하게 어리광도 부리고, 언니, 오빠,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떼쓰고 조르는 아이가 된다. 그러다 보면 나와 다정하게 시선을 맞추는 이는 기도하는 사람에서 어느새 하느님으로 바뀌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부했다. “우리가 강한 의심과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며 마치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삶의 구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기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2020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삼종기도 훈화 중).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에는 함께 외쳐 줄 이웃의 목소리 또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로저스 아저씨도 TV 속에서 “제 이웃이 되어 주실래요?” 하고 노래하듯 자신을 위한 기도를 망설임 없이 부탁한다. 바오로 사도도 신자들에게 보내는 여러 편지에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1테살 5,25)라고 썼다. 예수님 말씀에 충실한 사람도 어김없이 다는 이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타인의 기도는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 내가 한마디도 기도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날 대신해 하느님의 손길을 청한다.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나조차 모를 때,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하느님께 그것을 대신 여쭈어 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서로의 곁에 보내졌고, 수많은 성인과 성모 마리아의 전구가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늘 이어진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 기도 한 구절에 얼마나 안심이 되고 든든한지….

 

그러니 더 이상 삶을 혼자 짊어지지 말고 그냥 얘기하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 김연기 라파엘라 – 방송 작가, 문화 기획자.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의 복음화, 삶의 복음화’ 등 문화, 선교 프로그램을 구성해 왔다.

 

[경향잡지, 2020년 10월호, 김연기 라파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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