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2일 (화)
(백)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족 여정: 뭣이 중헌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7 ㅣ No.1007

[가족 여정] “뭣이 중헌디?”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잠언 22,6). 아이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가 사랑하며 살도록 도울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신앙보다 ‘학업’에 훨씬 관심이 많고, 자녀의 행복보다 ‘성공’에 더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가정이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돈과 지위와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의 신앙은 본인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싶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는 사실 부모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에 깊이 맛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결국 ‘학교>학원>성당’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고, 성당에 가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 버립니다. 좀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하나의 취미 생활로 전락해버린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시험 기간에 성당에 가야 하나?”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문득 영화 ‘곡성’의 명대사가 떠오르네요.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이러다 보니 성당 주일 학교도 제 기능을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주일 학교 아이들의 수가 계속 줄어듭니다. 인원이 너무 부족해서 몇 개의 학년을 통합해서 파행적 운영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일 학교의 교리 교사들도 부족합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스펙’을 쌓기 바쁜, 이른바 ‘삼포 세대’로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신앙마저 포기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슬픈 현실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정에서 신앙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교회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신앙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가족 치료 분야의 선구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다음 네 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봐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① 자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도록 돕고 있습니까?

② 자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돕고 있습니까?

③ 자녀가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돕고 있습니까?

④ 자녀가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돕고 있습니까?

 

많은 부모는 이 네 가지를 실천하고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이러한 부모의 헌신과 노고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와닿지 않을까요? 위 네 가지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 보겠습니다.

 

①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까?

 

●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까?

● 지나친 열등감과 완벽주의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지는 않습니까?

● 자신을 쏙 빼닮은 자녀의 모습을 인위로 뜯어고치려 하지는 않습니까?

 

②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까?

 

● 공동체 의식은 접어 두고 경쟁의식으로 가득한 삶은 아닙니까?

● 이웃이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보다는 배 아파하지 않습니까?

● 툭하면 가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습니까?

● 배우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는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③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합니까?

 

● ‘헬조선’ 같은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는 푸념으로 살지는 않습니까?

●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④ 나는 하느님을 사랑합니까?

 

● 하느님의 아들딸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종으로 살고 있습니까?

● 하느님을 지나치게 무섭고 두려운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 성당 활동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습니까?

●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까?

 

 

자녀의 나침반이 되면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자녀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부모의 생각이나 행동, 습관과 신앙 등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뜻과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훈계를 해도 부모의 삶이 모범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신앙에 관한 문제는 더 그렇습니다. 부모가 천주교 신자인 청소년들과 면담해 보면 “부모의 삶이 그리 신앙적이지 않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가 성당은 열심히 다니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그다지 신앙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고 툭하면 거짓말을 하며, 이웃을 험담하고 교통 법규를 어기는 등 실천적 모범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특히 서로를 가장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가야 할 부부가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접할 때는 “우리 가족은 이러려고 성당을 다니는 걸까?” 하는 심한 자괴감마저 든다고 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신앙인데, 자녀가 성당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 교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며 풀어내야 할 시급한 과제입니다.

 

다만 부모가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급하면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고, 그럴수록 자녀와 하느님의 거리는 멀어지게 됩니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방향만 정확하다면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만납니다. 부모가 자녀의 나침반이 되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직접 걸어가야 하는 것은 결국 자녀의 몫입니다. 부모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이 정확한지 스스로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까?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합니까?

나는 하느님을 사랑합니까?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 여정’, ‘부부 여정’ 등의 가족 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글 권혁주 · 사진 정상현]



36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