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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꿈이 없다면, 꿈만 꾼다면,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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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7 ㅣ No.1006

[영화 속 신앙 찾기] 꿈이 없다면, 꿈만 꾼다면, 라라랜드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꿈이 없는 사회는 빛이 없다. 꿈은 삶의 동기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 꿈이 얼마나 크고, 높으며, 아름다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꿈이 있기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고통과 슬픔도 참아 낸다.

 

우리는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꿈은 간절하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기도한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 인내와 행운을 달라고.

 

삶이 팍팍할수록, 희망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곳에서 꿈은 더욱 절실하다. 그리고 그 꿈은 이기적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 그 ‘무엇’으로 지금보다, 남들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꿈.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꿈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 꿈이 모여 세상을 발전시키기도 하니까.

 

모두의 소원대로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까? 아마 우리는 더 큰 불행을 만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불평하고 절망한다. ‘그렇게 수없이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주님께서는 왜 그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 건가?’, ‘모든 힘을 다했는데도 왜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꿈이다. 꿈이 기도와 노력만으로 모두 실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누구나 꿀 수는 있지만, 모두 이뤄지지 않기에 꿈이다. 모두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 않기에 주님이시다. 꿈이 아름다워야 하고, 신앙이 이기적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꿈의 가치는

 

꿈에도 선악이 있다. 그것은 ‘무엇이 되는지’에 있지 않다. 그 무엇으로 ‘어떤 것을 하는지’에 있다. 꿈의 가치는 나를 아름답게 만들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이웃을 따뜻하게 하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찾는 것에 있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하느님의 길을 따라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라면 가장 미천한 자리도 마다하지 않았고,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미아(엠마 스톤 분)에게는 꿈이 있다. 지금은 비록 커피숍의 점원으로 일하지만 언젠가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품팔이 피아니스트에 불과하지만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에게도 꿈이 있다.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재즈를 멋지게 부활시키는 것이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라라랜드’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뮤지컬 영화이니 노래로 보는 영상이라고 해야 맞다.

 

꽉 막힌 고속 도로, 빽빽하게 멈춰 선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노래한다, “내 꿈을 향해 나아가자. 때론 넘어져도 아침은 다시 오고 태양은 뜨니까.”라고. 그들 가운데 미아와 세바스찬도 있다. 두 사람은 추운 겨울, 꿈과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의 흐

름을 따르듯 사계절을 거친다.

 

 

겨울과 봄, 아직 꿈은 먼 곳에

 

꿈은 아직 저 먼 곳에 있다. 미아는 온갖 오디션에 지원하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세바스찬은 식당에서 사장이 요구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닌 즉흥 재주를 제 맘대로 연주하다 쫓겨난다. 춥고 외로우며 우울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사람을 기다리고, ‘불사조처럼 다시 날아갈’ 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둘의 겨울은 지나간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지만 만나고 또 만나면서 연인이 될 것이란 사실도 모른 채.

 

세 번째 만난 수영장 파티에서 미아는 말한다. “이상하게 계속 마주치네요. 인연인가.” 남자는 부정한다. “내 스타일 아니에요.” “아무 느낌 없어요.” 그러나 봄은 이미 둘의 ‘사랑’을 싹 틔우고 있었다, 수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사랑의 봄은 오고 있지만, 꿈은 아직도 팍팍한 땅속에 묻혀 있다. 여자는 오디션에 낙방을 반복하고, 죽어 가는 ‘재즈’를 나 혼자라도 지키겠다는 남자는 생계를 위해 잡동사니 연주나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1인극 대본을 직접 써서 연기하라고 용기를 준다.

 

연기와 재즈, 영화와 음악, 사랑과 꿈은 모두 판타지다. 그 속에서 둘은 제임스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을 보고, 길거리와 공원과 복도에서 ‘탑 햇’, ‘쉘부르의 우산’,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본뜬 낭만적인 복고풍 춤을 추고, 밤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가 왈츠도 추면서 구름 위를 걷는다. 봄은 이렇게 그들에게 꿈과 사랑의 싹을 키워 주고, 희망을 속삭인다.

 

 

여름과 가을, 사랑은 가고 꿈은 오고

 

젊은 날의 사랑은 여름 태양 같다. 설레는 마음, 뜨거운 시선, 감미로운 목소리에 미칠 듯이 뜨거워진다. 그 사랑의 감정이 남자에게 잠시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자신의 꿈을 잠시 접고 미아를 위해, 돈을 벌려고 친구가 제안하는 밴드에 참여한다. “나는 안다, 우리 꿈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란 예감을. 그건 사랑이 원하는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안한다. 여자를 위해 직접 감미로운 사랑의 주제곡까지 만든다.

 

그러나 여자는 안다. 아무리 인기와 돈을 얻고,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해도 그 선택이 남자가 말하는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점점 다른 세상에 머물면서 음악도 사랑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꿈을 버린 남자와 1인극에 도전했으나 참패해 꿈을 접은 여자의 사랑은 여름날 요란한 천둥을 울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끝난다,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세상은 그들과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도, 꿈도 실패와 좌절로 끝나고, 길 잃은 별들이 되는 그런 현실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까지 모든 희망을 접고 멈춰 버리게 하여야 할까? ‘라라랜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딛고 다시 시작할 용기와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도 우연과 운명을 통해 기회를 주신다. 그 기회를 얻은 미아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는 색깔을 주고자 기꺼이 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던진 이모를 노래한 것은 자신이 배우가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답이다.

 

 

다시 겨울, 꿈의 나라에서 꾸는 꿈

 

마침내 둘의 꿈은 이루어진다. 미아는 할리우드 스타가 되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즈 바를 운영한다. 그렇게 되기에 5년이 걸렸고, 그 긴 시간은 대신 둘의 사랑을 어긋나게 했다. 추운 겨울, 다른 사람과 결혼한 미아가 우연히 들른 세바스찬의 재즈 바에서 둘은 재회하지만 끊긴 사랑을 다시 이을 수는 없다.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사랑의 주제곡 연주였다. 연주하는 세바스찬의 미소와 그 연주를 들으면서 슬픔에 젖는 미아를 위해 영화는 상상으로나마 행복한 두 사람의 사랑과 결혼과 가정을 그려 본다.

 

이렇게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LA)의 별명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나라인 ‘라라랜드’는 꿈은 얻고, 사랑은 잃는 것으로 끝난다. 왜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꿈과 사랑, 모두를 멋지게 만드는 ‘해피 엔딩’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라라랜드’에서는 꿈만 판타지로 선택했는지 모른다. 사랑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상처와 아픔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 싫어서 하나쯤은 현실이라 말하고 싶어서이거나.

 

어떤 선택에서 비롯했든 그것으로 ‘라라랜드’는 오로지 꿈에 빠진 영화에서 벗어났다. 꿈의 나라에서, 꿈처럼 꿈을 이루지만 사랑만은 꿈의 나라의 모습도, 꿈도 아니다. 그것이 달콤한 영화를 마지막에 씁쓸하게 만들지만, 더 깊게 다가오게 한다. 만일 그 사랑마저 꿈에 빠지게 했다면 꿈만 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세바스찬이 “사람들은 왜 낭만적이란 말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라고 반문한 이유를 밝히기라도 하듯, ‘라라랜드’는 정말 1960-70년대 스타일의 음악과 춤과 노래를 낡은 냄새가 전혀 나지 않은 환상적 무대로 보여 주었다. 단지 보여주거나 대사를 대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과 생각조차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드러냈다.

 

음악도 춤도 인간의 진실을 표현할 때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음악 영화도 어설픈 노래 연극이 아닌 드라마가 된다. ‘라라랜드’가 뮤지컬 영화로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유도 감독의 음악, 특히 재즈와 춤, 사람들의 꿈에 소중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꿈을 얘기하는 영화는 늘 주인공에게 묻는다. “너는 왜 그 꿈을 꾸는가?” 그 질문은 우리를 향한 것이다. 꿈꾸는 자는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정말 꿈조차 꾸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지만.

 

* 이대현 요나 - 영화 평론가로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겸임 교수이다. 한국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가 있다.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이대현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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