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 (월)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2월 8일에서 옮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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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말씀 듣기 -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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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7 ㅣ No.533

[교부들의 신앙 - 말씀 듣기]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첫 번째 말씀은 ‘들어라.’입니다”(암브로시오, 「성직자의 의무」).

 

 

사랑으로 충만해지려면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물들고, 검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물든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첫 번째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써 당신의 사랑에 흠뻑 젖어 들고, 말씀으로 충만해져야만 복음을 합당하게 선포할 수 있으며, 놀라운 기적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2 참조).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순서를 지키셨습니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첫 번째 장소로 광야를 선택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기에 앞서 가장먼저 광야로 향하셨습니다. 광야, 그 고독과 침묵의 땅에서 성부의 품 안에 온전히 머무셨습니다. 외적인 활동에 앞서 내적인 충만을 이루신 것입니다.

 

 

말씀 읽기에 열중했던 암브로시오

 

가톨릭과 아리우스주의의 대립이 극심하던 4세기 후반 밀라노. 암브로시오 성인은 밀라노의 집정관으로 임명됩니다. 374년, 밀라노의 주교 아욱센시오가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주교 선출을 두고 가톨릭파와 아리우스파가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밀라노의 집정관이었던 암브로시오는 밀라노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고, 양측의 동의를 얻어 주교 선거 과정의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암브로시오가 평화로운 해결책을 추구하자고 연설할 때 한 아이가 성인을 가리키며 “암브로시오를 주교로!”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에 가톨릭파와 아리우스파 모두가 찬성하였고, 암브로시오 성인을 주교로 선출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암브로시오는 세례받지 않아 주교가 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주교직을 거듭 사양하였지만 끝내는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주교가 되기에 앞서 먼저 세례를 받은 성인은 8일 뒤인 373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습니다. 주교가 된 성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훗날 밀라노의 성직자들을 위한 규정을 담은 책에서 당시의 처지를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갑작스레 성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배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분을 가르쳐야 했습니다”(「성직자의 의무」, 1,1,4).

 

그리하여 암브로시오 성인은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르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말씀을 듣는 일(읽는 일)에 몰두했는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증언을 통해 짐작해 봅니다.

 

“‘그(암브로시오)는 대체 무슨 희망을 품고 살고 있을까? 유혹에 맞서 무슨 씨름을 벌이고 있을까?’ … 제가 원하는 바를 원하는 대로 그에게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는 꼭 필요한 요기로 몸을 돌보거나 독서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 그가 소리 없이 책을 묵독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럴 때면 저희도 하릴없이 소리 내지 않고 한참 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그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번거로움을 끼칠 엄두가 나겠습니까?”(「고백록」, 6.3.3.)

 

 

사제들에게 전하는 성인의 충고

 

이토록 말씀을 듣는 일에 열중하였던 암브로시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심을 다하여 사제들에게 충고하였습니다. 바로 사제들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침묵’입니다. 그래야만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가르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이사 50,4). 그러므로 말을 함에 있어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말하여라.’가 아니라 ‘들어라.’입니다. 하느님의 첫 말씀이 바로 ‘들어라.’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여러분의 길을 평탄케 할 수 있고, 혹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길을 깨끗이 보존하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시편 119,9)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들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혀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성직자의 의무」, 1,1,4-1,3,10).

 

유스티노 성인은 “말씀의 씨앗”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얻기까지 땀을 흘리는 것처럼,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영적인 땀을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수고의 첫걸음이 바로 침묵 가운데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로마 10,17) 때문입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농부들은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 버린 땅을 날카로운 쟁기로 갈아엎습니다. 마찬가지로 단단하게 굳어 버린 우리의 마음 밭을 ‘말씀’(성경)이라는 ‘영적인 쟁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씨앗이 숨을 쉬게 해야 합니다.

 

* 김현웅 바오로 - 성아우구스티노수도회 신부로 착한의견의성모수도원 수련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교부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김현웅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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