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가톨릭 교리

소곤소곤 교리: 믿음과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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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9 ㅣ No.2270

[소곤소곤 교리] 믿음과 유혹

 

 

“하느님을 믿고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의 일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며 지냅니다. 그런데도 유혹은 여전하고 힘든 시련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제 처지가 주위에 그리스도의 행복을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무엇보다 가슴이 아픕니다.”

 

 

모세의 시련

 

짧은 글 속에서 우러나는 믿음의 향기가 짙어, 사제는 행복합니다. 연이어 닥치는 시련이 자칫 ‘선교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며 마음 아파하는 고백이 저를 감동하게 했으니까요. 틀림없이 주님께서도 저와 같은 마음이실 줄 짐작하며, 더 복된 것을 예비하고 계실 주님께 자매님의 기도를 봉헌해 올립니다.

 

잘 아실 테지만 믿음이 삶을 평탄하게 이끌어 주는 도구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뽑힌 까닭에 훨씬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어 낸 인물이 성경 속에 수두룩하다는 사실이 잘 증명해 주지요.

 

하물며 성경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머무르시며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데요. 하느님의 아들까지 넘보며 ‘건드린’ 사탄의 오만함에 치가 떨립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탄의 유혹이 따를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야말로 믿는 이가 겪어야 할 필수 코스임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체험한 뒤에 오히려 사탄의 유혹이 더 극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욥의 이야기가 증명하고, 모세의 삶에서 더 뚜렷이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제 누구보다 억울했을 모세의 처지를 짚어 보며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모세야말로 느닷없이 하느님께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으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떨기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기적을 보이시면서 모세에게 당신을 온전히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극구 사양을 하다 겨우 마음을 바꿔 먹은 모세는 황당한 체험이었을 겁니다. 근근이 마음을 다잡고 하느님께서 내린 사명을 수행하고자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 한마디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바로 그때에 이 사달이 나다니, 모세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듭 사양하고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어르고 달래고 으름장까지 놓으며 꼬드기셨습니다. 그런데 싹 마음을 바꾸십니다. ‘이런 변덕이 있나?’ 싶습니다. 사명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려 하시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백 번이라도 ‘왜?’라고 물어도 마땅한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이러실 수가 있는지 따져도 무방하다 싶습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믿음의 지혜

 

그런데 무언가 슬그머니 집히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사실 모세는 사십여 년을 이방인의 땅에서 지냈는데요. 치포라와 혼인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을 둘이나 낳았습니다. 살아가는 재미가 알콩달콩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모세는 어느새 하느님의 율법을 저만큼 던져두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지나간 일이고 까마득한 옛일이라며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만족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을 묵살합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모세의 아내 치포라가 아들의 표피를 돌칼로 잘라내는 할례를 베풀었다는 점인데요. 치포라가 재빠르게 행동해서 남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려준 이야기 덕분이라 추리해 봅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하느님을 증언했기에 치포라는 남편의 말을 깊이 새겼으리라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모세는 머리로만 하느님의 계명을 알고, 몸으로는 전혀 실행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말하고 싶은데요. 이런 모세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극도로 분노하시게 했다고 여겨집니다. 당시에 치포라의 현명한 대처가 없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간담이 서늘해지는군요.

 

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계명을 ‘생략’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까요? 우리가 지닌 믿음의 지혜야말로 가족의 위기에서 방패가 되고 앓는 세상을 치유하는 명약이 될 것이라는 귀띔이 아닐까요? 나아가 교회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는 의미로 새기면 좋겠습니다.

 

 

늘 용기를 북돋우시는 주님

 

우리는 하느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고 유혹을 당하도록 방치(?)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어떤 역경에서도 힘을 주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려두지 않고 지혜로 도우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존재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치포라처럼 지혜로워지기를 원하시고 하느님의 사명에 앞장서 실천해 주기를 바라시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인간의 지혜를 넘어섭니다. 하느님의 방법은 늘 유익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 믿음으로 침묵하고 계신 당신의 뜻에 더욱 의탁하기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전하며 향기로운 믿음을 선물받길 기도합니다.

 

갖은 위기와 고난 중에도 늘 함께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시는 주님의 사랑이 마침내 크게 자랑할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 장재봉 스테파노 -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으로 지낸 4년을 주님의 ‘개인 지도’ 기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배움을 본당 사목에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눈’, ‘성모님의 눈’, ‘신자들의 눈’, ‘가난한 이웃의 눈’으로 월평본당을 꾸리려 애쓰는 주임 신부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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