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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아카데미: 복음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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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2 ㅣ No.1671

[사회교리 아카데미] 복음선포


"교회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함께”

 

 

작년 11월 14일 백남기(임마누엘) 형제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매일 오후 4시에 그가 입원해있던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 앞마당에서 정문 옆 천막에서 미사가 봉헌됐습니다. 미사는 9월 25일 임마누엘 형제의 선종 이후 빈소인 장례식장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10월 11일 저녁 8시 추계 주교회의에 참석 중인 김희중 대주교, 이기헌, 유흥식, 옥현진 주교가 함께 고인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주례를 맡은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임마누엘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과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작태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임마누엘 형제가 쓰러진 이후 줄곧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모든 이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사고가 난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300일이 넘는 동안 응급실 앞마당에서 천막에서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며 함께하신 형제 사제들, 수도자들, 교우들이 계셔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빡빡한 회의 일정을 쪼개 빈소를 찾아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한국교회 최고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바와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을 몸소 제시해주었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 당신을 따르고자 하던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똑같은 삶에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지 말고, 쉼 없이 밖으로 나가라고 독려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0항)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복음의 기쁨」49항) 교황은 특별히 사제들을 다그칩니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행사나 의식이 아니라 종교적 열정입니다. 사제들은 성공이나 출세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고통 받고 피 흘리고 빛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2013. 3. 28. 성 목요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이전에 이미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밖에서 ‘길 위의 미사’를 드렸습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죽어가는 4대강 곁에서, 제주 강정에서, 해고노동자들이 풍찬노숙하고 있는 현장에서, 광화문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빼앗긴 이웃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려는 ‘작은 예수들’이 있는 한 ‘길 위의 미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길 위의 미사’에 초대하며 예전에 썼던 묵상 시(詩) 하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길 위의 미사

 

성전 가운데 높게 매달려

미사 참례자를 압도하는 십자가는 없지만

함께 살기 위해 기꺼이 죽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이 온 몸과 마음에 퍼집니다.

 

주님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는

믿는 이의 의무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이끌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무관심과 어색한 조화는

처음 만난 낯선 지체들조차도 하나로 묶는

순수하고 뜨거운 연대에 자리를 내놓습니다.

 

다른 이들 보듬지 않았던 안락한 일상에서 그저 좋은 말씀이려니 스쳐 보냈던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 깊숙이 파고들고

먹히시는 성체는 이제 먹히라고 다그칩니다.

 

세속과 분리된 순간의 거룩함의 자리에

추한 세상을 보듬어 변모시키는

성속의 갈림 없던 태초의 거룩함이 가득합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23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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