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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거리를 두고 흔들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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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0 ㅣ No.4972

[로핑크 신부의 바이블 인사이트] 거리를 두고 흔들림 없이?(Distanziert und unerschütterlich?)

 

 

그리스 철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립니다. 실제로도 이 두 위대한 철학자는 서구 문화와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철학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스토아 철학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를 집필할 당시에, 스토아 철학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더 유명했고 추종자도 많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주된 물음은, “삶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고통과 인간의 욕망, 사회의 허상과 부자들의 권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그들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겪어야 하는 권세와 위력들을 직시할 줄 알았고, 빈곤에 대한 두려움이나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을 어떤 상태로 내모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욕망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세상 앞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제자들에게 “너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 안에 더 이상 격정이 날뛰지 못하도록 자신을 정화하고, 욕망이 더 이상 자신을 지배하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다만 도덕적 이성과 양심이 인간 안에서 주인이 되어야 했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석함과 내적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리하면 자기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흔들림 없는 영혼의 상태에 도달하면, 이제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죽음이 끔찍한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끔찍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인간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그 생각을 일단 내려놓으면,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겨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현명한 이는 그 어떤 생각이나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성을 따를 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성만이 인간을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바오로 사도 역시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8장에서 긴 구절에 걸쳐, 아무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오로 사도와 스토아 철학자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기서 세 가지 차이점을 분명히 해두려 합니다.

 

 

첫째 차이

 

먼저, 바오로 사도는 격정이 없는 평정한 인간을 선전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의 서신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달리, 바오로는 아주 격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는 예언자들의 격정과 하느님의 격정을 많이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 백성의 상황에 크게 흔들립니다(로마 9,1-3 참조). 그가 세운 공동체들의 상황이 그를 흔들어 놓습니다(이를테면 1코린 6,1-11 참조). 피조물의 탄식에도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는, 피조물이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로마 8,18-23).

 

바오로 사도도 마음의 평화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평화가 아닙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는 데서 평화를 추구하지만, 바오로가 말하는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서 생겨납니다. 그것은 성령의 평화입니다.

 

둘째 차이

 

둘째로, 바오로 사도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사실 죽음에서 끔찍한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만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친구인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죽음 자체의 현실에 마음이 흔들리고 북받치셨듯이, 또 그분 자신이 끔찍하고 처절한 죽음을 겪으셨듯이, 바오로에게도 죽음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래서 철학적으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섬뜩한 권세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적 삶의 현실을 바라보며 시편 44편 23절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로마 8,36)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이 어떻게 저항하는지 한 번쯤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처절하게 저항하며 피를 흘리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도살되는 양이라는 표상에 빗대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상황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오로는 이 표상을 골라, 로마 제국의 수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처럼 바오로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달리, 죽음의 끔찍한 권세를 미화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죽음일 때만, 하느님의 권능도 힘을 가집니다. 그 힘은 바로 죽은 이들을 부활시키시는 하느님의 승리하는 권능입니다.

 

셋째 차이

 

셋째로, 환난과 역경과 박해와 위험에서 구해주는 것은 바오로에게는 영혼의 흔들림 없는 평정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에 있고,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이 사랑에 대해 위에서 인용한 로마서 8장은 정점에 도달하는 결정적인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하느님의 이 사랑이 믿는 이들을 감싸고 떠받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마음 안에만 머무르는, 보이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멀리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몸을 입었습니다. 바오로가 정의내리는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도달한 사랑입니다. 물론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곧 바오로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할 때, 이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서로 받아주고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의 친교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서 8장을 마무리하는 위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곧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으며, 우리는 이 사랑을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성사들 안에서 만난다.”라고 말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취했듯 아주 실제적입니다. 바로 이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로마 8,18)을 과장하거나 미화하거나 외면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병은 질병으로, 죽어감은 죽어감으로, 죽음 자체는 죽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하나하나 거명하며 다 말해도 됩니다. 우리는 아주 냉철하게 현실을 받아들여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냉철함을 가지고 세상의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질병은 더 이상 질병이, 죽어감은 더 이상 죽어감이, 죽음 그 자체는 더 이상 죽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권세가, 두려움과 근심과 욕망의 권세들이 이미 그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변화되어 이미 부활 속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 자신 안으로 되돌아가거나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흔들림 없는 평정을 통해 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사랑을 통해 가능합니다. 이 사랑은 멋진 철학적 관념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역사의 실제 현실이고, 교회 안에서, 성사들과 하느님 말씀 안에서, 믿는 형제자매들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도달했습니다.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 세계적인 성서신학자이자 사제로, 독일 튀빙엔대학교에서 신약성서 주석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가톨릭통합공동체Katholische Intergrierte Gemeinde에 머물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출간된 저서로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마음코칭』 『주님의 기도 바로 알기』외 다수가 있다. 로핑크 신부님은 책 집필 외에 유일하게 『생활성서』 독자들에게 매월 글을 보내며 한국 신자들과의 소통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 번역 : 김혁태 - 전주교구 소속 사제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월간 생활성서, 2020년 8월호, 게르하르트 로핑크 저, 김혁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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