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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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산책: 조르주 루오의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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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산책] 조르주 루오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성당 아치창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알프스 자락에 아시 평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결핵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고지대의 신선한 공기가 폐에 좋다고 하여 결핵 요양원들이 들어섰고, 환자와 신자들을 위한 안식과 위로의 공간인 ‘아시성당’이 지어졌습니다.
이 작은 산골 성당이 최초로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로만 꾸며진 현대 성당의 이정표와 같은 곳이 되리라 누가 상상했을까요? 이는 또한 전 시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데 그쳤던 정체된 교회의 높은 벽이 허물어진 상징적인 순간을 의미합니다. 동시대 ‘최고의 예술’이 성당에 들어와야 진정 살아 숨 쉬고 영감을 주는 ‘영성의 공간’이 된다는 신선하고 의식 있는 발언은 도미니코회의 레가메(P. Régamey) 신부, 마리-알랭 쿠튜리에(Marie-Alain Couturier) 신부 등 소수의 성직자에 의해 일깨워졌습니다.
특히 프랑스 현대 성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쿠튜리에 신부는 아시에 현대 작가들을 섭외한 장본인으로 다음은 그의 목소리입니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영감을 받은 자다. 예술가는 그의 속성과 기질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직감에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성령의 부름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기 ‘아시 프로젝트’에 1순위로 초대받은 이는 바로 20세기 종교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입니다. 성당 출입문 벽면 다섯 개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아치창 중 세 번째인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는 이사야서 53장 7절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를 묵상한 결과물입니다. 창 하단에는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et il n'a pas ouvert la bouche)'고 직접 써놓아 그의 필체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랏빛 탁자 위에 푸른 화병이 있고 만개한 꽃다발이 꽂혀 있습니다. 꽃의 화려한 향기에 매료되어 계속 바라보노라면 우리 시선은 자연스럽게 푸른 화병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 이르게 됩니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중, 피땀 흘리는 얼굴이 닦인 ‘베로니카의 수건’ 그리고 에데사 왕을 치유한 ‘만딜리온’을 연상시키는 성안(聖顔). 이 눈부신 꽃다발은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당하고 희생한 그리스도에 대한 헌정이자 그의 상처받고 지친 마음과 육신에 바치는 위로이자 찬미입니다.
“하느님, 예술로써 찬미 받으소서, 저희 마음에 함께 하시듯 저희 창작에도 함께하소서, 아멘.”(국제 크리스천 예술가 협회 기도문 중)
[가톨릭신문, 2026년 2월 8일,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0 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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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루오 <꽃다발,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1937~1939년경, 스테인드글라스, 아시 평원의 모든 은혜의 성당,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