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0일 (화)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느리지만 신중하게 더디지만 조화롭게, 창립 선조 권철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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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1-18 ㅣ No.2487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느리지만 신중하게 더디지만 조화롭게


창립 선조 권철신 암브로시오(1736~1801)

 

 

예비신자 교리를 시작할 무렵이면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이 다릅니다. 소위 ‘가방끈이 긴’ 예비신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살아있고 또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잘하고 성심성의껏 인도하지만,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감사하게도 교리반의 ‘요주의 인물’들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어느 순간 믿음의 사람이 되어 기도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믿음을 심어주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부활의 미명이 밝아오는 아침, 제자단의 첫째와 막내가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요한은 먼저 나아갔으나, 나이가 많았던 베드로는 한참 뒤처지고 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저마다 믿음에 이르는 속도가 같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벽의 가르침을 듣고 즉시 따랐던 동생 권일신과는 달리, 양근 권씨 가문의 맏형이었던 권철신에게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성호학파를 이어갈 총아로 평가받으며, 출세에는 본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오로지 진리 탐구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권철신은 매사에 신중했습니다. 동생이 찬찬히 살펴보라고 권한 천주학 서적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지붕 틈 사이로 진리의 하늘을 어렴풋이 보여주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살피고 연구하고 사색합니다.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천주학을 연구했고, 그 실천적 수행을 위해 1779년에는 천진암에서 강학을 열고 주도했던 그였지만, 그의 학문적 탐구와 성취가 곧바로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권일신은 1784년 겨울에 세례를 받고 그 뒤에 권철신이 세례를 받게 됩니다. 동생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형은 발부터 차근차근 몸을 담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때 달릴 길을 달린 동생 권일신을 순교의 월계관도 먼저 받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1801년 신유박해에 이르러 형 권철신은 다섯 번의 문초와 형벌 끝에 순교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동생이 서둘러 달려간 자리를, 형은 우직하게 지켜와 어느덧 교회공동체의 기둥이자 스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권철신이 선택한 세례명은 서방교회 4대 교부 중인 한 분인 ‘암브로시오’ 성인이었습니다. 주보성인을 닮은 그의 내면에서는 모든 것을 건 달리기, 곧 지성과 신앙의 달리기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녔던 민첩한 지성은 결승선에 이르기 위해 걸음이 느린 신앙을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신앙 없는 지성만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아는’ 더디지만 조화로운 길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받는 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권철신 암브로시오

때로는 믿음이 더디고,

때로는 배움이 더딘 저희를 도와주시어

눈먼 신앙에는 이성의 빛을,

길을 잃은 지성에는 믿음의 빛을 보여주소서.

 

[2026년 1월 18일(가해) 연중 제2주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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