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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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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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신약 성경] 다시 만난 신약 성경
‘다시’ 만난다는 제목이 부담스러울까요? 벌써 한 번은 읽어 보았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보에 싣는다는 것을 전제한 제목입니다. 주보를 읽는 분이라면 오늘도 주일미사에서 독서와 복음을 들었고, 강론도 들으셨겠지요.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여러 본문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이 처음인 것처럼 교과서식으로 설명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주보를 읽는 분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성경을 접하시겠지요. 몇 년 후에도 계속 강론을 듣고 주보를 읽으시겠지요. 그래서 모든 것을 요약하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성경 읽는 것을 박물관 방문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처음 가는 사람은 대충이라도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간 사람은 다시 보고 싶은 어떤 부분을 주로 보거나 특별전을 보러 갑니다. 쉽게 말해서 ‘종주’보다는 ‘산책’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보를 모아두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차곡차곡 모으면 책이 되는 글이 아니라, 한번 쓱 지나가는 글입니다.
그러면 이번 산책에서는 어디에 초점을 둘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왜 썼을까?”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을 때 던질 수 있는, 또는 던져야 하는 유일한 질문은 아닙니다. “왜 썼을까?”라는 질문은 저자에 눈길을 돌리게 하지만, 독자에 더 비중을 둘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저자에 중점을 두는 것은 그보다는 더 고전적이고 기초가 되는 접근입니다.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또 대화가 하염없이 빗나가지 않게 하려면, 저 말을 왜 하는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본문에서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 본문이 나에게 갖는 의미에 더 비중을 둘 수도 있지만, “왜 썼을까?”는 간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책은 신약 성경입니다. 신약 성경을 왜 썼을까요?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신약 성경을 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려고 썼습니다. 예수님은 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도 처음에는 직접 다니며 신앙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교회들에 자주 직접 갈 수 없었기에, 서간을 쓰고 복음을 썼습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주고 그들의 신앙을 길러주는 것, 이것이 신약 성경을 쓴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의정부에 있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루카가 이천 년 후의 신자들을 위해 복음을 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왜 썼을까요? 이렇게 멀리,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살고 있을 신자들에게도 그들이 알고 믿고 있는 예수님을 그대로 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을 왜 썼을까?” 중대한 문제입니다. 신약 성경 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앙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성경은, 믿음을 간직하라는 그들의 유언일 수도 있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수녀 :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저서 「이사야서」 「이사야서 쉽게 읽기」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구약의 역사설화」 등.
[2025년 12월 7일(가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의정부주보 2면, 안소근 실비아 수녀] 0 20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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